전통문화를 움직이는 통영사람들

                                                                                          정소란(시인)

마당 한 켠 작업장에서 판재 가공을 하는 동안 매서운 바람이 쓸고 간다. 나뭇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몇 시간을 가공하는 그는(김이돈,58세) 서예가다. 손질한 판재는 서각의 필수재료이다. 전통 서각을 지도하는 수입은 서예의 수강료보다 낫다. 40년 가까이 서예를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수강료는 별 차이가 없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씁쓸할 때도 있다. 문화센터의 서예 수업도 활동적인 과목에 밀려, 전통 서예술의 맥이 휘청거림을 느낀다. 리본에 글씨를 써야 하는 꽃집에서는 글씨를 배우러 왔고, 여의치 않으면 리본을 들고 와서 써 가던 시대는 가고, 다양한 서체로 리본 문구를 프린트 인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과 외로움이 저절로 따라오는 전통 서예를 나름의 자부심으로 해 왔지만, 작품 판매와 주문은 전과 확연히 다르다. 수강생 수만큼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소의 비용만 주고 빈집을 빌린 그는(성주경,53세) 2019년부터 활 만드는 일을 배워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모든 재료를 옮기고, 대문과 작업할 평상도 만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낮에만 일하며,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간단히 식사한다. 이곳에 궁방을 차린 이유는 작업장이 있어야 궁방 허가가 나기 때문이다. 만든 활은 대한궁도협회의 공인을 받아야만 판매와 공식 대회 사용을 할 수 있다. 장인정신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까다롭고 긴 공정의 이 일을 자처한 그는, 활도 잘 쏘아 5단 명궁이다. 종일 혼자서 활을 만드는 그는 전통 활에 완전히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행사가 급감하고, 매주 하던 수강도 없다, 처음 설장구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풍물의 장단 소리를 들은 지 오래되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부심으로 시작하여 공연도 하고 수업도 하였다. 꽹과리·징·장구·북의 네 가지 전통 타악기로 구성되어 행사 전에 흥과 운을 돋우는 풍물이지만, 갈수록 서구화된 초청공연에 밀리더니 코로나가 가세하여 영 뜸해졌다. 땀이 마를 날 없던 장구채는 건조해지고, 장단에 들썩이던 어깨춤도 옛일이 되었다. 전통을 잇는 일에 한몫한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그녀는(이○○,58세) 의기소침해졌다. 전통 풍물을 전수하고 공연하는 길은 있다. 그러나 연습 장소를 구하기도 마땅찮을뿐더러 그녀 스스로 강사와 공연을 하면서 일을 섭외하기란 벅차다.

1998년에 시작한 체육관 수업을 주말로 축소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그는(임채훈,52세) 전통 무예인 활을 쏘는 사람이다. 15년 넘게 활 쏘는 일에 빠지면서 입상과 승단을 거듭하였다. 그는 신궁의 관문이라고 하는 9단 승단만 남기고 있다. 통영 활쏘기 기록 중 최초의 고단자이다. 그만큼의 대우와 지원이 없어, 쉽게 생업을 포기하고 국궁에 전념할 수 없던 그는 적은 연봉이지만, 통영의 명예를 걸고 실업팀에 선발되었다. 열무정 소속으로, 처음 접하는 사우도 실전 거리에서 활을 보낼 수 있게 지도한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건너뛰고, 명중의 희열을 느끼게 하고, 실력 또한 갖출 수 있게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대우와 지원을 받는다면 전통 무예 국궁의 맥을 잇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궁 인구가 적어, 각 시· 도별 지원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통영의 뺄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얼과 혼이 숨 쉬는 통영이 차별화된 지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10대부터 시작한 나전칠기는 생활을 궁핍하게 하였다. 어려운 일임을 알고도 지금까지 이어온 것은 그의(김○○,63세) 남다른 생각 때문이다. 본원인 통영에서 나전칠기가 지금까지 이어오게 만드는 몇 분 중의 한 사람인 그는 먹고 입는 것부터 생활의 고됨을 느낄 수 있다. 검소하다 못해 안쓰러운 그의 손은 늘 옻칠한 얼룩이 있다. 식물의 잎과 꽃의 문양을 관찰하고 작품에 응용할 생각으로 가득한 그에게는 소품이라도 팔려야 생활할 수 있고, 학생과 관광객의 체험이 재료비를 제한 얼마만이 수입이 된다. 시대의 변화와 코로나는 그것마저 큰 영향을 주었고, 관광객이 뜸하니 작품이 간간이 팔리던 일도 없다.

주변에 계시는 몇 분의 일상을 적어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재능이 많다. 묵묵히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저들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뼈저리게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일할 공간확보와 생계비 지원이 시급하다. 선정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인 지원에 도전하기 위해 복잡한 서류 수십 가지를 제출해야 하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장인이 되고 문화재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면 이제는 그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들이 몸으로 하는 것을 직접 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이미 장인이고 문화재다. 저토록 발버둥 치는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통영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소란(시인)
정소란(시인)

정소란(시인) :  2003년 4월 월간 『조선문학』 등단. 시집 『달을 품다』, 『꽃은 시가되고 사람은 꽃이되고』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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