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겐 이젠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근데 이 두 놈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했다. 사소한 문제로 시작해 가끔은 여동생을 울리고야 마는 지경에 이르기도. TV드라마에서 서로 아껴주는 포장된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현실남매’였는지도 모른다.

김숙중기자
김숙중기자

어릴 땐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좋게 말로 말리기도 하고, 혼을 내면서 종료시켰으니까. 근데 청소년기에 이르러서 못된 사회현상하고 만나니 이게 아주 고약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남혐여혐. 본 기자로서는 이런 부조리한 퇴행현상을 납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세상의 절반이 남성이고, 세상의 절반이 여성인데 그들이 서로 헐뜯는다면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것 아닌가? 안 그래도 인구절벽인 대한민국에, 미래까지 망칠 일 있나?

가끔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었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남성의 영역을 여성이 차지하는 게 비일비재해 졌으니까. 여성들도 할 말은 많다. 여전히 유교적 전통이 뿌리깊이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피해를 이만저만 받은 게 아니니까. 여성을 직장의 장식품처럼 취급하는 사회분위기도 그렇고.

사실 불공정한 현실을 인정하고 문제점을 진단한 뒤 해법을 찾아가는 합리적인 사고력만 있으면 별문제일 듯한데, 여기에 뜻밖에도 아니 어쩌면 필연적인 요소들이 개입되면서 사회병리적인 혐오와 갈등으로 썩어들어 갔다. 사회부적응자, 대인관계 기피자, 모라토리움 증후군 증상자, 은둔형 정신미성숙자들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라는 익명의 공간을 만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온갖 똥덩어리들을 입으로 배설해 내면서 이 혐오는 시작됐다.

21세기 공동체에 적합한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건전한 담론보다 이 혐오를 먼저 접한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동조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이것을 정치인들이 ‘대중 갈라치기’에 활용하고 언론이 재생산함으로써 이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특히 가족, 사랑, 명예, 존중 등의 전통적인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보수정치인들이ㅡ기자는 이들을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ㅡ편가르기에 더욱 적극적이었던 점.

일명 이들 키보드워리어들은 소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자기들의 못된 욕구만 해소하고 충족하면. 남성여성 갈라치기는 식은 죽 먹기고, 남북단일팀이어도, 난민이어도 얼마든지 갈라치기 된다. 은둔형 미성숙자들은 자신들의 손가락에 휘둘리는 공동체가 웃겨 죽을 지경이었을 게다.

그런 공동체의 암적인 현상이 이번 대선판 막바지 일거에 사라지는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이미 대선판이 끝났으니 어느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이른바 ‘1번남과 2번남’. 1번남이 있는 곳은 청정구역이고, 2번남이 있는 곳은 오염구역이라는 것. 조부모님뻘인 6070에게 1번남은 기특한 손자고, 부모뻘인 586에겐 내 아들이며, 삼촌·이모뻘인 40대에겐 귀여운 조카이며, 2000년대생과는 친한 형동생 또는 선후배 사이다. 2030기혼여성들에게는 씩씩한 동네청년이고, 미혼의 2030에게는 연애와 결혼, 남사친·여사친 상대다.

1번남을 스윗남으로 불러야 하는 2번남들은 남들이 보기엔 ‘찐따’들이다. 이들은 삼대남을 틀타충이라 부르고, 2030미혼여성을 꼴페미라 부르며, 2030기혼여성은 맘충, 2000년대생은 급식충, 40대는 대깨문, 586은 늙꼰, 6070은 틀딱으로 부른다.

최근 2030여성들이 이를 한방에 정리한 도표를 공개하자, 어떤 이대남은 이렇게 말하며 열광했다. “피ㅆ녀, 김치녀, ㄸㄲ충, 스윗남, ㅈ팔육, 틀딱쉰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온갖 갈라치기 혐오단어를 쓰는 남자를 2번남으로 정의함으로써, 같은 이대남인 나는 자유를 얻었고, 여자들도 모든 남자들을 배척허지 않게 됨. 이게 바로 진정한 젠더갈등 회복, 사회갈등 봉합”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다. 안타깝게도 그 분은 유세 때 사회통합, 갈등봉합 같은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부디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우리 사회의 갈등봉합, 부조리 타파를 위해 힘써 주길 기대한다. 대선판을 휩쓸었던 혐오언어의 종말 또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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