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한국계 미국작가 이민진의 베스트셀러작품이자, OTT서비스인 애플TV+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최근 방영된 8부작 드라마다. ‘빠찡꼬’를 영어로 표기하다보니 파친코가 됐고.

본 기자는 아직 애플TY+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에피소드1은 감상했는데, 그 영상미·편집·은유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첫 편을 보는 순간 ‘이 드라마 대박’이라고 느꼈을 정도. 원작을 읽을 때도 그냥 책 속에 푹 빠지게 만들더니, 드라마는 더했다.

김숙중 편집국장
김숙중 편집국장

이민진 작가는 대학시절 일본에 선교사로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어느 교수가 들려준 한 재일동포 소년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재일동포 2세 중학생 소년이 학교에서 일본인 친구들한테 배척당하고, 괴롭힘 당하고, 죽어버리라 퍼붓는 저주를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이야기. 이민진 작가가 말하길 이민자의 딸인 그녀 자신을 미국사회가 끌어안아주었던 덕분에, 미국인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주었던 덕분에, 도서관 사서들이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덕분에, 미국인 교수들이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던 덕분에 변호사가 됐고, 현재의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 소년과 그녀가 처한 여건은 비슷했지만, 운명은 전혀 달랐음을.

잘 알다시피 일본은 우경화된 사회다. 선진국 중 이 정도로 우경화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일본제국은 많은 조선인을 노동자로 부려먹기 위해 일본으로 데려갔고, 2등, 3등이나마 일본 시민권을 부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자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의 국적을 박탈해버렸고, 귀국하려는 조선인에게는 재산의 가치를 10분의 1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국적으로 일본에 버틸 수밖에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결국 그녀로 하여금 소설 파친코를 쓰게 했다. 다시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과거의 전쟁범죄 역사를 돈으로 세탁하려 했고, 거의 성공하는 듯했지만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화 되면서 오히려 전 세계인들이 일본의 민낯을 알게 된 이 아이러니를 어쩌랴.

일본은 우경화의 대가로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고, 이젠 20년을 넘어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다. 극단주의자도 있고, 아직 나치를 신봉하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웃나라를 혐오하는 사상이 사회지배적인 곳은 없다. 왜냐면 그것은 비정상이니까.

우리나라도 오랜 우경화 국가다. 진보적인 국민성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우파우세다. 하지만 진보를 혐오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보수가 오래된 옳은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자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라면, 진보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자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보수가 도도히 흐르는 강줄기라면, 진보는 신선한 물을 대주는 수원(水原)이다. 진보의 맥이 끊기면, 보수의 강물은 썩는다. 그러면 10년, 20년, 50년을 잃는 것은 필연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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