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 이야기 

                                                                                                              수필가 유영희

용화사 광장에서 오른쪽 길을 접어들어 급경사 길을 오르면 관음암이 나타난다. 그 길을 내처 오르면 도솔암이 자리잡고 있다.

고려 태조 26년 (AD 943년)에 창건했다고 하니, 물론 건축물은 그 동안 신축, 개축을 거듭하였지만 도솔암이란 이름은 그야말로 천년고찰인 것이다.

이 도솔암 건립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

도솔선사라는 수행자가 바위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가 선사 앞에 나타나서 울어대었다. 도와달라는 시늉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입안을 들여다보니 비녀가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살생을 한 짐승이지만 선사는 비녀를 빼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호랑이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처녀를 업고 와서 도솔선사 앞에 내려놓았다. 혼절한 처녀가 정신을 차린 후, 선사가 알아보니 처녀는 성이 배 씨이고, 전라도 보성사람으로 아버지는 그 마을 이방이라고 했다. 선사는 그 처녀를 자기 고향으로 데려다 주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살아 돌아왔으니 그 부모는 얼마나 기뻤을까. 감사의 뜻으로 선사에게 300냥을 시주하였는데, 그 돈으로 도솔암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굴은 도솔암 위에 있다.

이야기로만 전해 듣다가 직접 가 본 것은 몇 해 전의 일이다. 가는 길이 가팔라 적잖이 고생스러웠다.

암벽과 암벽사이에 한사람이 기거하기에 적당한 공간이 있었는데, 영험을 믿는 무속인들이 굿을 한다고도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 켜놓은 촛불이 굴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둑하고 생경스런 느낌이 들어 선뜻 굴 안으로는 들어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되돌려 본 통영 쪽 해안 경치는 일품이었다. 확 트인 시야로 우리가 복닥거리며 사는 동네가 내려다 보였다. 저기서 서로 잘났네, 못났네 해가며 지내는 것이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그 때는 정리가 안 되어 을씨년스러운 점도 있었는데, 최근에 도솔암 주지스님의 각별한 관심으로 주변정리가 많이 되었다. 가는 길도 다듬고, 호랑이상도 설치해서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올해도 어느덧 몇 달이 훌쩍 가 버렸지만 임인년, 호랑이해가 아닌가.

한번 올라가서 호랑이 기운도 받고, 동물이 지은 살생의 죄를 용서하고 베푼 선사의 자비와 그에 보은한 호랑이에 대한 옛날이야기도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의 바람에 시달릴 때면, 산에 올라 솔잎이 걸러주는 바람을 만나보라. 나뭇잎이 바람만 빗질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지러운 마음도 다듬어 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서서 통영항을 보노라면 마음그릇이 커지는 것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유영희(수필가)
유영희(수필가)

유영희(수필가) : 《수필과 비평》등단, 수필집《옹기의 휴식》. 시집, 유담 《각자 입으로 각자 밀을 하느라고》. 제10회 한국 꽃 문학상 수상. (현) 통영문인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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