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수군의 노래

                                                                 

박길중(수필가, 시조시인, 시민기자)

예로부터 통영은 일본 수군의 수륙병진 계획을 좌절시키고,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조 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한산대첩의 고장으로 이름나있다. 대첩을 축하하기 위해통영시에서는 해마다 새로운 주제(2022년 주제: 장군의 눈물)를 정하여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재)통영한산대첩문화재단이 있다. 대첩 축제 의미의 극대화에 애쓰는 한산대첩문화재단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더하여, 재야의 뜻있는 분들이 행사를 지켜보며 역사적 의미를 새겨 넣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있으며, 그 제안의 일부를 채택하여 의미를 진전 시켜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낸다. 지역축제에서 벗어나 전국의 대표축제로 발돋움 시켜내기 위한 통영시와 문화재단의 노력은 각별하다.

올해는 마침내 통영한산대첩축제가 대면 행사로 치러질 것 같다. 그러나 60회 이상 행사를 치르는 동안 진정으로 장군의 우국충정의 대서사시를 주제로 행사를 치른 적이 있었는가? 크게 싸움에서 이겼으니 축하의 제전을 펼쳐서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 만을 천편일률적으로 제공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손을 얻어 방향의 더듬이를 조심스레 해야 하는 지금이다.

의지의 부족일까? 상상력의 한계일까? 제안이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아쉬움에 회한이 서려 있는 당시의 두 가지 제안이 있어 61주년을 즈음하여 되새겨 보고자 한다.

첫째가 한려투데이 신문에 기고한 이국민 극작가의 ‘통영시에 드리는 한산대첩 축제 발전 건의’(2010년 1월22일자)가 그 제안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오래전 제안이지만 지금 읽어봐도, 창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집행부에서는 이 획기적 발상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으리라는 짐작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엉뚱한 발상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은 당연했으리라.

그러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야 하는 연출가는 상상력의 극한지점까지 가보아야 한다. 다시는 못 돌아오는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지역과 나라를 관통하는 이 제안이 허공의 메아리조차 되어 보지 못한 채 뜬구름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업무 담당자들의 갇혀있는 사고를 나무라기 이전에 집행부의 진취성 부족이 앞선다. 왜, 제안을 한 당사자를 만나 아이디어를 구해볼 생각을 안 했는지 진지하게 반구(反求)해야 한다.

너무 커서 소용이 닿지 않아 부숴버린 ‘혜자의 박’ 이야기는 철인 장자의 통찰이다. 우화로만 넘겨버리기에는 많은 반성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10년 ‘통영시에 드리는 한산대첩 축제 발전 건의문’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자존에 걸맞게 통영시에서 과감히 목표를 세워 한 번 더 추진해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금 제안하는 바이다.

두 번째가 장군의 시를 축제의 창(唱)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시조창으로써 대첩의 의미를 더 높이는 방법을 제안한 적이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말이다. 5년여 전에 필자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 역시 부질없는 제안으로 녹슬어 버린 지 오래다.

감정을 실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노래만큼 강한 것이 있을까(?) 엄숙함을 더해 통영문화의 정체성과 혼을 강화하는 또 하나의 방법 가운데, 시조창으로써 대첩축제의 의미를 더 높이는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타지역에 비하면 한참 늦었지만

인프라는 이미 구축되어있다.

국악의 한 갈래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시조창은 결코 낯선 음악이 아니다. 부질없이 질러 대는 고함 소리나, 불편한 소음도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오묘하고 신비한 맛에 빠져드는 것도 시간 문제다.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에 이미 불러왔던 노래이기에 더욱 그렇다.

상상해보라. 전국에 시조창 동호인만 해도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의 의욕은 대회가 개최되는 어디에서라도, 이루어내고야 마는 강한 선비정신의 자부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이들의 1%만 통영을 무대로 경창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통영시는 넘쳐난다.

이충무공의 호국정신을 선양하고 한산대첩의 성전을 되새겨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축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화 관광 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한산대첩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이 대회가 개최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지난날 갑옷과 전대(戰帶)를 끄르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며, 통제사의 사명과 책임에 빈틈없이 임했던 완벽주의자. 그에게 정신적 안식을 제공했던 시조의 창작은 장군이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실체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대첩 기념일에 맞춰 그의 시가 한산섬 수루에서 시조창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장군께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개최 시기는 원문성(轅門城) 터의 복원과 더불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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