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달인이 통영에 있다. 걸어도 보통 많이 걷는 게 아니고, 풍찬노숙 일쑤지만 그 과정에서 인생을 깨닫는 그는 철학자다. 바로 정호진씨(60).

올해 환갑이 된 정호진씨는 최근 지역에서 유명세를 탔다. 곳곳에 나붙었던 ‘전국 국토대장정, 나 홀로 길을 떠나다’는 현수막 덕분에. 정호진씨가 외로이 걸어간 거리만 무려 618.23Km. 날짜로는 보름동안.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는 그렇게나 걸을까? 그런데 이유는 참 단순했다.

축구경기 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만족스런 축구경기를 하기 위해 몸을 만들어야 했고, 몸을 만들려면 걷기만큼 좋은 게 또 없었단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 누가 봐도 아주 야무진 몸매를 지닌 정호진씨는 나름대로 한번 먹은 결심은 실행에 옮긴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술·담배를 끊기로 마음먹고는 지금까지 어긴 적이 없단다. 심지어 금연금주 이후 군대를 갔음에도 두 번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고.

통영 태생의 정호진씨는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산양읍 척포에서 태어나 지금은 폐교된 미남초를 1년 다니다가, 뜬금없이 진해남산초로 전학 가서 2년 정도 다녔다. 그러더니 삼천포초로 전학 갔다가 다시 통영 두룡초로 돌아오긴 했는데, 정작 졸업은 충렬초에서 했다. 이는 전부 잠수부 일을 하던 부친의 일을 따라 옮겨 다녔기 때문.

부친은 다섯 형제들과 함께 전부 잠수부였는데, 1974년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YTL함정 침몰사고 났을 때 부친은 형제 2명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안타깝게 익사한 시신 수 십구를 수습해서 신문에 난 적도 있단다.

당시 기사를 간직하고 있을 만큼 부친을 그리워하지만, 당시 드문 일은 아니었던 것이 부친이 학비를 대주지 않는 바람에 동원중(당시 통영동중) 2학년 때 제적되도록 한 것은 두고두고 원망스럽다. 그의 모친은 그가 어릴 때 헤어진 뒤 본 적이 없다. 운동, 특히 축구를 좋아했고, 공부가 싫진 않았지만 잦은 전학과 학교제적은 그를 실망시켰다. 공부를 하려고 해도, 친구를 사귀려고 해도 언제나 망설이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학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2008년엔 중학교 검정고시, 2015년엔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만학도다. 이게 다 울트라워킹이 가져온 행복.

중학교 중퇴 후 나전칠기 기술을 배웠던 그의 청년기 벌이는 남부럽지 않았다. 통영 나전칠기 기술자로 서울에서도 제법 대접받았다. 알다시피 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패턴이 변하면서 나전칠기는 뒤안길로 사라져갔고, 생계를 위해 30대에는 택시를 했다, 개인택시가 목표였으나 그 업계도 레드오션이 되면서 그만 두고 말았다.

당시엔 딱히 울트라워킹이라는 용어도 생소했거니와,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륵산을 오르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정호진씨는 “이후로 비나 오나 눈이 오나 산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2012년 6월 4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처음으로 울트라걷기를 도전한 날이기 때문.

평소 운동하던 몸 그대로 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통영에서 진주까지 67Km, 진주에서 서울 사당동까지 400Km, 다시 남산타워, 영동대교를 거쳐 63빌딩까지 총520Km를 13일 동안 걸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나중엔 늘어난 발목인대 기브스를 위해 찾은 병원의사는 “절대 걷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나무작대기 하나 구해서 짚고 사흘 쯤 쩔뚝쩔뚝 걸어가니 걸을만해지더란다. 도와준 분들 얼굴이 생각나서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음은 물론.

이후 전국일주는 7번이나 더 도전했다. 2013년 6월 통영~거제 일주 250Km, 2014년 통영~전남녹동~제주일주~사천공항~통영 530Km, 통영~남해 왕복 340Km, 통영~군산 280Km, 통영~부산 120Km, 다시 거제일주 225Km 등.

올해 국토대장정이 8번째다. 통영을 출발, 경북과 충북, 강원을 거쳐 15일 만에 서울로 입성하는 618Km코스다. 울트라워킹 한다고 걷는 내내 풍찬노숙하는 것은 아니다, 장소와 위치 인증을 하려면 스마트폰 충전이 필수고, 사흘에 한번은 모텔숙박을 해야 한다.

국토대장정 후원자들의 서명이 적힌 액자를 보여주는 정호진씨
국토대장정 후원자들의 서명이 적힌 액자를 보여주는 정호진씨

정호진씨를 통영공설운동장에서 만난다면 아마 그는 울트라워킹에 도전하는 중일 것이다. 2019년 운동장 400m트랙을 250바퀴 도는 100Km 완보를 했고, 올해 무더위 지나면 250Km를 걸을 예정이다, ‘걷기가 곧 자기수양’이라는 울트라워커 정호진씨는 2년 연속 울트라워킹 그랜드슬램 달성하는 것, 한국걷기연맹이 인증하는 한국100Km걷기(제한시간 24시간), 낙동강105Km걷기(24시간), 군산새만금66Km걷기(12시간), 마스터즈 250Km걷기(12시간) 등 4개 대회를 성공하면 된다.

올해도 이미 2개는 달성했고, 군산새만금대회 완주와 250Km걷기만 하면 그랜드슬램이다. 넘사벽 기록을 세우는 것도 목표다. 내년에 하루 4~50Km씩 100일 동안 전국 4500Km 국토대장정걷기에 성공하는 것. 현재 우리나라 기록은 3500Km인데, 이를 무려 1000Km나 뛰어넘는 것.

“두 다리가 곧 의사”라는 울트라워커 정호진씨, 딴딴한 종아리 근육을 깨알 자랑하는 그의 목표가 성취되길 함께 기원해 본다. 그럼 이는 곧 통영의 자부심이 될 것. 

도달포인트 인증을 위해 이정표에서 핸드폰 사진촬영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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