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오브페이머(Hall of Famer). 홀오브페임(Hall of Fame)은 명예(名譽)의 전당(殿堂)을 일컫고, 홀오브페이머는 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사람,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의미한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메이저리그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NBA, NHL, 테니스, 복싱, 레슬링도 명예의 전당을 가지고 있고, 일본과 캐나다 프로야구도 가지고 있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물론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명예의 전당도 있다.

새삼 명예의 전당 얘기를 왜 꺼내느냐? 통합 이전 충무시였던 1984년부터 문화상을 수여했으며, 최근 올해의 수상자도 선정됐는데,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자부심 드높은 통영사람들이 40년 가까운 문화상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오늘날에 와서는 도대체 누가 수상자였는지도 모르고, 수상의 명예를 안겨준 공적들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며, 더구나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통영시문화상을 수상한 선조들의 면면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들이 자신의 고향을 위해 어떤 열정으로 무엇을 헌신했는지 배울 수 있도록, 통영 명예의 전당을 설립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명예의 전당과는 결이 다르긴 하다.

보통 명예의 전당하면 특정분야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니까. 스포츠도 종목별로 있고,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나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처럼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 아무렴 어떠랴. 명예의 전당을 설립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명예의 전당 그 자체로 관광명소

가장 유명한 MLB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은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데, 단순한 전시실이나 박물관이라기보다는, 헌액된 선수·감독·심판·행정위원·야구 개척자들을 두루 볼 수 있는 판테온이자, 무엇보다 야구팬이던 아니던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기도 하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과 심판, 그라운드 아나운서, 기자, 선수노조위원장 등 업계종사자라면 분야를 안 가리고 헌액 될 수 있다. 1936년 설립돼 올해로 86년째인 이곳을, 최초 다섯 명 중 하나였던 베이브 루스 포함 지금까지 330여 명이 헌액된 이곳을 매년 약 35만 명이 방문하며, 누적방문자도 1500만 명을 넘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있다. 1980년대 초 업계에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 설립을 공식화했을 때, 필라델피아, 멤피스, 디트로이트, 신시내티, 뉴욕 등이 치열하게 유치전을 펼쳤다. 로큰롤의 황제라고 불리는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가 커리어를 시작한 멤피스에 들어서는 것이 역사적 상징성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전당 및 박물관 설립기금으로 무려 6500만 달러를 지원한 클리블랜드의 머니파워에는 이길 수 없었다. 공공기금을 이렇게나 지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들어서면 엄청난 경제유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는 얘기는 제법 오래전부터 나왔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설치될 계획으로 2013년부터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하다가 최근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명예의 전당 건립 협약안이 부산광역시의회를 통과했다. 사업비는 부산시가 투자하고, 부지는 기장군이 제공하는데 기장군은 운영비까지 추가 투자해 공공박물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예향 문화상 40년이면 가치 충분

통영시문화상을 40년 가까이 선정 시상해 온 통영시로서는, 문화상 수상자들을 위한 ‘통영 명예의 전당’을 건립해 볼 가치가 있다. 어느 지자체도 자기 지역 출신 인물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을 세운 곳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왜? 할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희소가치가 더 있으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통영시문화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단지 지역민들만 이름을 아는 그런 분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 수 있는 명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닌 경우도 많다. 1984년 최초의 통영시(충무시)문화상 수상자인 전혁림 선생을 모르는 통영시민은 거의 없을 테지만, 같은 해에 지역사회개발분야에서 수상한 송경훤 선생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85년 수상한 김상옥 선생은 알아도, 박삼강 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89년 수상자 중 김춘수 선생은 익히 알지만, 정원진(체육) 선생과 공봉희(지역사회개발) 선생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제 겨우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이럴진대 하물며 세월이 더 흐른 뒤엔 우리 지역을 위해 열정을 바쳐 헌신해 명예로운 문화상을 수상한 선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조차 모르게 될 수 있다.

놀랄 일이 하나 더 있다. 지금까지 통영시문화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충무시 때 20명이 선정됐고, 통영시 들어서 1995년부터 올해까지 23명이 선정됐는데, IMF경제위기 뒤 격년제로 바뀌었다가 2020년부터 다시 매년 선정하는 점, 2008년에는 수상자를 내지 못한 적도 있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알지만 2014년 이전까지 30년 동안의 수상자 공적내용과 증빙자료 등을 확인할 길이 없다.

통영시에 알아본 바로는 2014년 이후 자료도 단지 문화상 심사 자료로만 남아있을 뿐이고, 세부적으로는 추천서·이력서·공적조서·증빙자료로 구성되는데 2020년 자료는 공적조서와 증빙자료조차 분실한 상태였다. 통영시 관계자는 “문서보존연한이 5년인데다가, 수차례의 사무실 이전 과정에서 아마 분실된 것 같다”고 말하는데, 통영시문화상 수상자 선정 자료를 일반 공문서와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자체가 ‘예향’이라는 자부심에 침을 뱉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몇 년마다 보직이 바뀌는 공무원 탓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조례에서조차 뒷받침을 못해 주고 있기 때문. 1995년 제정된 통영시문화상 조례에는 문화상 수상자 선정과정 전반에 걸친 자료와 증빙들에 대한 별도의 보존방안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통영시문화상은 분명히 “고향을 위해 헌신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업적을 빛나게 함으로써 다른 시민들의 귀감을 삼는 것은 물론 미래세대에게도 훗날 고향을 위하겠다는 동기를 불어넣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통영시문화상 조례(§1)는 그저 “향토문화 향상과 지역사회발전을 위하여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에게 통영시문화상을 수여하는 것을 목적으로”할 뿐이다.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색채가 짙다. 수여자나 수상자나 동격이어야 하고, 상호존중의 가치를 높여야 상의 권위도 높아질 것이다.

조례에는 시상부문을 예술, 체육, 지역사회개발의 3개로 제한하고 있는데, 여기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때의 정신세계가 배여 있다. 지역사회개발이란 모호한 또는 광범위한 용어 덕분에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젠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만큼 지역사회 모든 분야로 범위를 넓힐 때가 됐다. 예체능 분야는 먹고 살기 힘들어도 손가락질 받는 분야는 아니다.

 

선진국 걸맞은 조례와 절차로 정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 낙오한 계층을 위해 헌신하거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궂은 분야에서 묵묵히 헌신한 사람들도 통영시문화상 수상대상자로 고려할 때가 됐다.

문화상 수상자는 2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선정하는데, 위원회 안에는 시상부문별로 분과위를 두고 있다. 또 제적의원(아마 위원을 의원으로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과반수 출석으로 회의를 시작하고,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며, 수상자 결정은 과반출석에 2/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돼 있다.

문화상 수상자 선정과정이 일반적인 회의 방식으로 결정되도록 한 이 조례는 좀 더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굳이 분과위를 둘 필요가 있을까? 해당 부문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분과위에서 결정한 사안을, 심사위 전체회의에서 부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예술부문은 예술분야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결정할 테니, 이는 문화상 수상자 선정의 공정성을 의심하도록 만들 수 있다. 비전문가라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시상부문 확대를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회의 참석자가 매년 몇 명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권위를 의심하지 않도록 겨우 과반 넘기는 정도가 출석한 회의에서 결정하지만 않았기를. 전문지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심사위원이 될 것이지만, 표결보다는 점수를 배점하는 선정방식도 고려해 볼만할 것이다.

참고로 MLB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미국야구기자협회와 원로위원회에서 10년 이상 취재경력을 가진 기자들이 투표권을 얻어 기명투표로 선정한다. 10년 이상 빅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가 은퇴 5년이 지나면 이후 10년 동안 선정후보에 오르며, 후보자 25~40명 중 기자 한 명이 10명까지 이름을 적을 수 있는데, 75% 이상 득표해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5% 이하를 득표한 후보는 이후 선거에서는 탈락한다.

조례에서 한 가지 규정해야 하는 것은 선정자들이 자신의 업적과 관련한 자료들을 통영시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업적이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대가없이 제출하기에 너무 값진 것일 수도 있다. 강제성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통영 명예의 전당에 전시할 사료이니만큼, 개인적인 물품이라도 충분히 전시물로서의 가치는 있을 것이다.

서울시도 2016년부터 명예의 전당 헌액자를 선정하고, ‘서울의 얼굴’이라고 하여 선정자의 사진과 공적이 담긴 동판을 지하철 통로 벽면에 설치하고 있다. 통영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박물관 및 전시관 형태의 전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박경리기념관, 김춘수문학관, 전혁림미술관도 다 있지만, 통영시문화상 수상자들의 공적과 사료들을 한 데 모은 명예의 전당은 후세들에게 향토사를 가르치는 교육현장이 될 수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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