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야생화에 홀딱 반한 경찰관 한규철 경감. 통영 소매물도 출신으로 격무에 지친 심신을 등산과 야생화 가꾸기로 16년을 보낸 고성경찰서 한규철 형사팀장이 이젠 수필가로써의 솜씨까지 선보이며 전국대회 대상의 영광을 누려 화제다.

고성경찰서 수사과 형사팀장 한규철 경감(55)이 제23회 경찰문화대전 산문분야(수필)에서 전국대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딱딱한 경찰공직자라는 이미지를 문화생활을 통해 유연하게 바꾸고자, K-컬처의 츌발점이 된 2000년 시작해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대회다. 전국의 경찰공무원, 경찰공무원 가족, 일반직원 등 경찰가족을 대상으로, 한국·문인화, 서양화, 서예, 사진, 시, 산문 등 6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가리는데, 한규철 경감은 가을야생화를 소재로 한 수필 작품 ‘가을 산을 걸으며’로 부문통합 대상을 수상했다. 이른바 그랑프리인 셈.

통영 소매물도 출신으로 1990년 5월 순경 임관해 올해로 33년째 공직생활 중인 한규철 경감은 16년 전 통영 강구안에서 열린 분경야생화 전시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완전히 매료되면서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 속에도 그가 야생화에 빠져든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열성적으로 취미생활을 한 덕분에 (사)대한민국분경야생화협회 사무총장 맡고 있을 정도다.

한규철 경감은 “섬소년 출신이다 보니 어릴 적 추억도 기억나게 만드는 야생화에 빠져 들었다”고 말했다. 야생화가 취미인 덕분에 등산을 자주 하는 그가 글쓰기에까지 관심을 넓힌 것은 이채롭다. 한규철 경감은 “원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다.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간도 안 나고,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도 찾지 못했다”며 “1년 전쯤 어느 문화강좌를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규철 경감은 “조서꾸미고, 공문서 작성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그는 아직 등단은 안 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아마추어로써 전국대회 대상의 영광 안은 만큼 “야생화 기르기는 꾸준한 취미로 삼으면서 작가로써도 창작활동을 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마치 작가와 함께 등산하며 야생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 지면이 할애하는 한도까지 그의 작품을 실어본다. (실리지 않은 부분은 인테넷에 전문 게재할 예정)

 

▲고향 소매물도를 그리며 만든 한규철 경감의 분경야생화 작품
▲고향 소매물도를 그리며 만든 한규철 경감의 분경야생화 작품

 

[수필] 가을 산을 걸으며

 

어느 계절인들 산이 좋지 않을 것인가. 야생화를 좋아하고 또 기르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꽃이 많은 봄과 그리고 가을 산을 좋아한다. 여름에도 물론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핀다. 녹음의 향기가 짙게 번져나는 계곡에 피어 있는 나리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호랑나비라도 날아와 앉기라도 한다면 정말 좋은 사진이 된다. 그리고 물봉선, 마타리 같은 여름 꽃도 좋다. 그러나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산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긋하게 느끼면서 홀로 걷는 가을은 정말 좋다.

산을 향하여 가는 들길에는 대개 개망초의 무리들이 하얀 꽃송이를 벌판처럼 펼쳐놓고 있고, 밭가에 있으면 잡초 취급받는 강아지풀도 토실토실 정겹다. 산의 초입에는 구절초나 쑥부쟁이들이 길 옆 바위나 나무들 틈에서 하늘거리는 꽃대 위에 초롱초롱 꽃을 피워 놓았다. 아름답고 흥겨워서 콧노래라도 나올 것 같은 풍경이지만, 가을이므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산과 꽃도 차분하여 오히려 청초하고 나의 마음도 푸른 호수처럼 맑아져서 저절로 경건해 진다.

숲 그늘이 짙은 산의 중턱에 들어서면 천남성을 볼 수 있다. 여름에 꽃을 피워 가을에는 정말 붉은 구슬의 열매들이 탐스럽게 옥수수 봉오리 모양으로 달려있다. 손이 저절로 갈만큼 매혹적인데, 독이 있으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가을 산은 꽃뿐만이 아니라 열매들도 많다. 팥알보다도 작은 붉은 열매들이 듬뿍듬뿍 모여 열려있는 가막살나무의 풍경은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망개라고도 널리 불리는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도 참 곱다. 그 뿐이랴, 먹을 수 있는 으름덩굴의 열매는 어떠한가. 짧은 바나나, 또는 형광등처럼 벌어진 으름은 따 먹기 아까울 정도로 귀한 정경이다.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어느새 산머리가 보인다. 산의 능선에는 대개 억새밭이 있기 마련이다. 바람에 땀을 말리며 흔들거리는 억새들의 물결을 바라보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역시 가을 산의 백미는 억새밭인 것 같다.

야생화 애호가들이 예전에는 몇몇씩 무리를 지어 산채(산에서 채취하는 것)를 한답시고 야생화를 캐어오곤 하였지만, 최근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개의 야생화들이 애호가들의 온실, 비닐하우스에 있으므로 서로 교환하거나 화분 등으로 답례하여 갖고 싶은 품종을 구할 수가 있다. 산야에서 직접 구하고 싶다면 가지를 채취하여 삽목(꺾꽂이) 하거나, 열매를 따서 번식 시키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야생화에 빠진지는 십 년이 좀 넘었다. 친구들이랑 우연히 들른 야생화 전시장에서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화단의 화초나 꽃집의 꽃은 전시된 야생화에 비하면 그야말로 들러리에 불과할 그저 그런 꽃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릴 적에 지천으로 보아서 눈에 익은 야생화도 있었다. 고향인 소매물도에서 발에 걸릴 정도로 많았던 해국이랑 구절초, 바위솔들이 돌과 화분에 올려져있었는데,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는 단번에 그 야생화 동호회에 가입하였던 것이다.

야생화는 종류가 너무나 많아서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단지 이름을 모르고 살았을 뿐이다.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불러주고, 서로 눈을 맞추어야 비로소 그 야생화가 내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익혀가는 재미도 좋으려니와, 선배들로부터 한 포기, 두 포기, 선물로 받으면 창가의 책상에 올려두고 몇 날을 즐거워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꽃마다 자태들은 다 다르지만, 대체로 야생화는 화초에 비하여 새침하면서도 고고하고 부끄러운 듯 피었으면서도 당찬 모습이다. 그 멋과 맛과 향이라니…….

야생화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나 초심자들은 야생화가 키우기 힘들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화초에 비하여 크게 어려울 것은 없다. 오히려 병충해에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겨 쉽게 죽지 않는다. 바위손이나 세뿔석위들은 죽은 듯이 몇 달을 말라 있어도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잎을 활짝 펴는 모습은 신기에 가깝다. 대체로 뜨거운 직사광선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반그늘에서 물 빠짐이 좋게 심겨져 있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꽃도 피우며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야생화다.

지금은 나도 야생화 선배가 되어 후배들을 챙기고, 나의 야생화 하우스도 장만하여 명실상부 마니아가 되었으며, 전국 야생화협회 사무국장까지 맡아보고 있다. 봄, 가을의 전시회 때면 정말 바쁘다. 정신 바짝 차려 업무들을 해치우고 주말에는 야생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방문하는 동호인들로 정신이 없지만, 행사를 잘 치루고 나면 그 뿌듯한 보람은 모든 수고를 충분히 잊게 할 정도다.

전시회도 성황리에 끝이 나고 이제 가을도 깊어간다. 막바지 단풍놀이로 남쪽의 유명 산들은 인파들로 붐빌 것이다. 나는 그런 산을 일부러 잘 찾지 않는다. 동네에서 가까운 산. 높지 않아서 유명하지도 않은 산을 주로 고른다. 다만 편백이나 소나무가 울창한 산은 피한다. 편백이나 소나무류의 침엽수들은 계절을 느끼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그들의 숲 밑에는 풀이나 야생화가 잘 자라지 않아 식생이 단순하다. 야생화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막과 같은 느낌의 숲인 것이다.

참나무류의 낙엽, 갈잎을 밟는 정취는 얼마나 좋은가. 인적이 드문 산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와 함께 걷는 즐거움이라니. 그 갈잎들의 이불을 덮고 춘란과 야생화들은 겨울을 견디면서 봄을 준비하는 것이니, 정말로 애틋한 자연의 이치 아닌가.

간혹 보이는 야생감나무에 열린 붉은 감들의 풍경이나, 무리지은 팥배나무의 열매들의 장관은 참으로 좋다. 내가 잘 모르는 버섯들도 가지가지로 예쁘게 피어나는 계절도 가을이다. 이들을 만나러 간다. 나를 들뜨게 하는 이런 생각들은 주말이 되면 더욱 강열해진다.

오늘은 기다렸던 토요일. 누구와의 동행도 없이 혼자 나서는 길이니, 약속이나 장소, 시간에 구애받을 일도 없다. 오르기로 마음먹은 산은 집에서 가까운 경남 고성의 거류산이다. 571미터로 주위에서는 높은 산에 속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진해만과 거제도, 한산도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모습은 정말 일품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엄홍길전시관에서 출발하여 문암산을 거쳐 거류산에 오르며, 하산은 순환코스로 거북바위를 돌아 출발점으로 복귀하는 게 보통이다. 나는 대체로 바닷가 마을인 거류면 당동마을회관에서 오르는 경우가 많다. 보다 한가로우며, 거류산성을 거쳐 산 정상에 오르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는 임도를 타다가 중간 샛길로 빠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하산한다.

가벼운 배낭에 물이나 챙겨 넣고 신발 신으면 준비는 끝이다. 매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야생화, 그리고 변함없는 자연. 가을 산을 향하여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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