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曲線)은 직선(直線)을 만나지 않는 한 자기가 직선인 줄 안다. 거짓도 수 백 번 거듭하면 참으로 생각되고, 그 상태로 수 백 년 흘러가면 참이 오히려 거짓처럼 느껴지게 된다. 곡선을 알고, 직선을 알고, 참과 거짓을 충분히 구분할 줄 아는 한 사람으로 이 얼마나 참기 힘든 굴욕인가?

김숙중 국장​​​​​​​
김숙중 국장

산양읍 당포에 주앙 멘데스 기념조형물이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 그 포르투갈 사람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하야 ‘최초 서양인 도래지’라는 타이틀(?)을 통영사람들이 하나 손에 넣은 것이다.

세계 어디 내놓아도 가슴 당당히 내밀 만큼 자부심 강한 예향 통영사람으로서 나는 영 불편하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비유에 자존심 상해할 정도의 문화마인드가 넘치는 충무공의 후손으로서 서양 우월적 관점이 낳은 이 사생아 기념비가 나는 영 마뜩치 않다.

천영기 통영시장의 포르투갈 방문 해외출장을 두고 “‘주앙 멘데스 기념조형물 제막식 참석’이라는... 방문목적도 빛이 바랜다... 삼덕항의 한쪽에 기념비를 설치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잡풀이 무성한 상태”라는 언론의 비판기사도, “리스본 예수상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예수상이 포르투갈과 브라질 간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서로를 마주보는 방향으로 설치 된 바”라는 통영시의 보도 자료도 가소롭기만 하다. 주앙 멘데스가 예수급 정도는 된다는 말이라면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날 소리다.

그 주앙인지 후앙이지 하는 사람이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조선에 온 것도 아니고, 당시 일본에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오래 전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얻은 조총으로 조선을 침략까지 했으며, 그저 일본으로 향하던 포르투갈 선박이 풍랑을 만나 침몰했고, 그 난파선에 타고 있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조선바다로 표류해 온 사람이 명나라 사람 16명, 왜인 32명 외 1명의 흑인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그 흑인의 국적이 어딘지 추적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만들려는 노력은 안 하는 지 한번 물어보자. 아프리카는 제3세계국가라서? 가난한 대륙이라서? 우리나라도 반세기 전에는 가난했었고, 제3세계에 속했는데도? 서양인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인보다 유능하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저열한 인종차별적 분별력이 아닐 수 없다.

알고 보니 2004년 통영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어느 사학자가 등록유초의 기록을 인용하며 주앙 멘데스가 최초의 서양 도래인이라고 주장하며 이 모든 일들이 발생했다. 당시 진의장 통영시장은 이 주장에 몹시도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박연이라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선원으로 1626년 일본으로 향하던 중 풍랑에 좌초되면서 동료 2명과 제주도로 표류한 사람이다. 그는 2년 뒤 서울로 압송됐고, 훈련도감에서 총포의 제작을 담당하다가 심지어 1636년 병자호란에도 참전했다. 1653년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땐 제주도로 가서 통역을 맡았고, 서울압송 뒤 3년 동안이나 함께 지내며 우리 풍속과 말을 가르쳤다. 조선여성과 결혼해 후손까지 남겼다고 하니 아마 그는 조선 땅에 묻혔으리라. 전라좌수영에 배치되기도 했다는 하멜은 13년 뒤인 1666년 조선을 탈출,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가서는 ‘하멜표류기’를 출간했다. 도대체 주앙 멘데스는 무슨 발자취를 남겼는가? 아무 것도 없다.

기록상 남은 최초의 서양인이라면 차라리 세스페데스 신부다. 그는 일본에 포교차 왔다가 임진왜란 동안 왜군과 함께 조선땅을 밟았고, 기록도 남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도 그가 전도한 기독교도다. 고니시의 가문이 십자가 문양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독실한지 알 수 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조선의병의 용맹한 모습을 기록에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단지 우리나라 기록이 아니라서 최초가 아니라고? 참으로 편협한 시각이다. 일본에 관련한 기록이라서 자존심 상하는 반면, 별 볼일 없는 인물이라도 우리 기록에 있다면 만사오케이?

나는 할 수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그 최초의 서양인 도래지 기념비를 부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얼마나 서양인 우월적인 마음의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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