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턱에 걸린 해                                                                                  

김판암 시인·수필가
김판암 시인·수필가

어스름한 기운이 맴도는 아침. 눈 비비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둠이 가시기 전 동네는 아직 빛에 잠겼다. 여명이 사방을 비추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는 밝아지고, 해는 산허리를 줄기차게 오른다. 오후에 산을 올라 내려올 때면 중천의 기세등등하던 해는 중턱을 걷더니, 밀려오는 어둠에 자취를 감춘다. 해는 하루를 열기 위해 오르기 시작하면 물러서지 않고 정상에 이르렀다가 내리막길을 간다. 거쳐야 하는 노정이다. 내려온 후엔 어둠 속에서 한밤을 지새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햇살 비치는 날이 있다. 하늘이 붉으면서 비가 오락가락하면 간혹, 무지개가 두 발로 서 있다. 해가 무지개의 후광 되어 일곱 가지 빛을 비추면 산란한 몸은 빛난다. 그때 먹구름 사이를 삐져나온 햇살은 중턱을 오르는 중일 때도 내리는 중일 때도 있다.

구름이 잔뜩 낀 날 하늘이 검붉은색을 뿜으면, 구름과 어우러진 하늘은 무언가 의구심 많은 날을 읽힌다. 옛사람은 이날을 “호랭이 장가가는 날”이라며 하늘에 사는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해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 주며 해거름 한다.

해는 산을 오르기 전 어둠 속에 있었고, 구름이 가렸을 때도 자기 길을 걸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정상을 향해 가야 하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어둠 속에 갇혀 밤을 지새워야 한다.

삶은 그렇지 않다. 오르다 내려갈 수 있고, 내려가다 오를 수 있다. 남을 비추기도 하고, 때론, 길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굳이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 개척할 수 있고 쉬엄쉬엄 더듬어 갈 수 있다. 산에서 내려가는 중턱이라도 되돌아 다시 정상을 향해 갈 수 있다. 길의 돌부리에 걸릴 때도, 가파른 바위 위에서 걸음이 무거워 불끈 쥔 손에 땀이 맺힐 때도 호흡을 조절하며 간다. 익숙한 길은 쉽게 가지만. 그렇지 못한 길은 물어서라도 간다. 우리네 삶이 가는 길은 해와 다르다. 해는 일방통행이지만, 우리의 길은 원하는 길로만 갈 수도 거슬러 갈 수도 있다. 밀려오는 어둠을 피할 수도 있다.

삶은 육십부터라고 하니, 아직도 나는 오르는 중턱에 이르지 못했다. 발목 힘줄은 지치지 않아 꾸준히 걷는 중이다. 그러나 힘들면 천천히 간다. 젊은 삶이 있는 구역에서는 외면당할 수 있지만 굽히지 않는 걸음을 딛는다. 그곳이 정상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어쩜 걷는 과정에 몇 개의 정상을 거쳐 왔는지도 모르고 길만 재촉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지금 걷는 길은 정상도, 중턱도, 높고 낮음도 보이지 않는다. 걷는 무게가 조금은 무겁게 조금은 힘들게 느껴질 뿐, 빼앗기지 않을 행복으로 옹골지게 간다.

어떤 이는 걸어보지도 않고 내리막 중턱에 서 있다. 많이 걸어왔다고 여겨서일까. 산 위로 걸어보려 하지 않고 다가오지 않은 어둠만 걱정하고 있지 않은지. 지쳐서 어둠만 향해 뚜벅뚜벅 가고 있지 않은지.

가녀린 햇살 속에서 빛 찾아 길을 밟는다.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걷는 걸음은 밟는 이유와 가야 할 이유 속에서 어둠이 멀게 느껴진다. 여명이 시작된 산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간다. 정상에 도달하지 않아도, 땀 흘린 시간이 있다면 수고했노라고 나 자신에게 위로할 힘이 있다.

어려서부터 함께 거닐었던 해를 세어보니 정상에서 내려가는 것 같은데, 발걸음은 정상을 향한 출발점에 있는 것 같다. 무지개가 아니고, 신비함이 없어도, 내일을 끌어 오늘에 비추면, 그곳에서 편안히 걸을 수 있기에. 잠재우지 못한 발걸음은 아직도 걷는다.

김판암(시인·수필가) : 통영 출생, 시집 《삶! 그곳에서 숨 쉬다》, 통영문인협회, 물목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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