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협 조합원 이익 위한 전문경영인 도입 취지 무색

내 사람심기, 채용비리, 일감 몰아주기, 금융사고 빈발 등등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농·축협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차원에서 2009년 법률을 개정해 도입한 ‘비상임조합장’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실제로는 지역 농·축협의 실권을 장악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고, 장기집권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농·축협의 신용·경제사업 등을 책임져야 하는 상임이사(전문경영인)의 권한마저도 비상임 조합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여서 제왕적 조합장 제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긴장감이 있어야 함에도 비상임조합장이 연임의 제한을 받지 않은 채 장기 집권함으로써 ‘내 사람 길들이기’, ‘한 사람 바라보기’가 만연해지고, 이는 결국 ‘채용비리’, ‘일감 몰아주기’ 등 조합원의 이익과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는 또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특혜대출’, ‘횡령 등 금융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비상임조합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조만간 법률개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상임조합장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9년부터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최근 결산보고서 자산총액이 2500억 원 이상인 경우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두어야 하고, 비상임조합장인 농·축협 전문경영인으로 ‘상임이사’를 두어야 한다. 자산규모가 커지면서 비전문경영인 출신의 조합장이 자칫 조합원의 이익을 헤치는 결정을 내릴 경우를 미연에 막고자 하는 취지다. 경영전반은 상임이사 책임 하에 운영하고, 비상임조합장은 조합원 관리 등 대외업무를 맡는 식으로 업무분장을 하는 셈. 덕분에 비상임조합장은 연임제한을 받지 않기로 한 것.

통영에는 비상임조합장을 둔 조합이 3군데다. 통영농협, 새통영농협, 통영축산농협 등. 오는 3월 전국동시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유력시되는 새통영농협 차경용 조합장은 두 번째 임기 시작이 유력하고, 통영농협 황철진 조합장은 3연임이 유력시 된다. 통영축협 하태정 조합장은 21년간의 5선 임기를 마치고 용퇴를 결정했다.

지난해 농협중앙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역 농·축협은 총 1118개소인데, 이중 무려 41.3%에 해당하는 462곳이 비상임조합장 체제로 운영 중이다. 또 비상임조합장 중 4선 이상인 농·축협도 75곳이었다. 전체의 16.2%나 된다. 42명이 4선이고, 5선도 18명이나 됐으며, 6선이 11명, 9선이 3명 있었는데 무려 37년간 10선을 한 조합장도 한 명 있었다.

비상임조합장이 대외업무만 처리하는 만큼 상임이사가 조합의 경영전반을 관장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게 되기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직원에 대한 인사권은 상임이사에게 있지만, 실상 상임이사에 대한 인사권이 조합장에게 있는 구조여서다.

상임이사 선임을 결정하는 인사추천위원회의 의장이 조합장이고, 위원 7명 중 2사람을 조합장이 추천하기 때문에 조합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게 됨으로써, 조합장이 사업전반이나 인사권에 관여한다고 해도 상임이사가 맞설 수 없는 구조다. 결국 모든 권한을 가지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비상임조합장 제도의 불합리한 점이라는 지적.

이러한 막대한 영향력 행사는 채용비리, 특혜대출, 일감 몰아주기, 근무태만 등 각종 폐단을 일으키며 언론의 한 면을 종종 장식한다. 농협중앙회의 감사보다 조합장의 한 마디를 더 두려워하는 웃지 못 할 일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다음 조합장이 되기 위해 현 조합장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 현 조합장은 막강한 영향력으로 후계자를 지명함으로써 사실상 조합장 직위를 세습하며, 토착세력화 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농협중앙회의 실효성 없는 감사도 이에 일익한다는 지적은 진작 나왔다. 지난해 농·축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총 10건이었다. 스포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한 횡령, 직원이 고객 다수 명의 도용한 대출금 횡령, 가상자산 투자를 위한 횡령 등. 공교롭게도 10건 중 9건이 비상임조합장이 있는 자선규모가 큰 곳에서 발생했다.

우연일 리가 없다. 전문가들은 농협법을 따르는 부실한 감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가 외부감사를 한다 해도, 1000개를 훌쩍 넘는 지역조합을 모두 감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국회는 이미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제한하도록 농협법 개정안을 심사 중이다. 전문경영인에게 운영을 맡겨 조합원의 실익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영구적 임기 연장 수단으로 전락했고, 제왕적 조합 운영의 폐해가 속출하는데다, 농협중앙회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기 때문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 법이다. 한번 썩은 물이 다시 정화되기를 바라긴 요원하다. 새로운 비가 내리는 것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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