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매립 100만평 보다, 통제영 복원이 통영미래 블루오션이다』

[기고] 통영의 미래는 통제영 남문 복원에서 부터 시작된다!

정동영 전 경남도의원
정동영 전 경남도의원

국립국어원 편찬 표준국어대사전에 「통영」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나온다. 1. “『역사』 조선 선조 26년(1593)에 이순신이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어 한산도에 설치한 군영. 뒤에 거제현과 고성현 등으로 옮겼다가 고종 32년(1895)에 없앴다.” 2. “『지명』 경상남도 남해안 중앙부에 있는 시. 한려 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지이며 원근해 어업 기지가 있는 항구 도시로, 갓과 나전 칠기가 유명하다.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져 신설되었다. 면적은 238.02㎢.”로 적혀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 이름으로서의 통영보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통제영 준말인 통영이 국어사전에 먼저 수록되어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통제영이 바로 현재 통영의 뿌리이며 모태로 여전히 생활공간으로서의 통영에 직접적이고도 현실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미 지난 도의원 시절 의정활동이나 언론 등을 통해 통영의 미래는 통제영 복원에 있다고 여러 번에 걸쳐 말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경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주 신라왕경 특별법」의 사례와 같이 가칭 「통제영 복원 특별법」을 제정해 통제영 복원을 제도적으로 접근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우리 통영의 경우 수많은 통영 고지도와 근대 사진 등이 남아 있어 구전 등에 의한 주먹구구식 상상적 복원이 아니라 기록에 근거한 실증적 복원이 가능해 시민의 합의와 그에 따른 집행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원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통제영 남문인 청남루 복원과 관련해 나온 여러 논의들은 과연 통제영 복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먼저 지난 민선 7기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청남루의 디지털 복원 논의다. 이미 여러 시의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디지털 복원은 통제영 복원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부족해 보인다. 만약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철거된 중앙청 대신 그곳을 공터로 두면서 영사기와 같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빛으로 광화문 형상을 쏘아 올린다면 과연 누가 광화문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물론 청남루 실물 복원이 현실적으로 재산권 행사 등으로 인한 민원 문제나 예산이 수반되는 등의 어려움이 당연히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이러한 복원과 관련한 당연한 어려움으로 인해 한갓 말장난과 같은 디지털 복원이 추진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복원 대상이 없는 복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청남루 실물 복원은 통제영 완전 복원이라는 프로젝트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만약 이번에 청남루가 온전히 실물로 복원되지 못하고 이른바 복원의 흉내만 내는 등의 디지털 복원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앞으로 통제영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청남루는 통제영과 강구안을 잇는 남북축의 중요 건물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남루 복원은 단순히 건물 한 동이라는 물리적 복원의 의미를 넘어 앞으로의 통제영 복원과 관련한 시정(市政)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정책적 의미로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필자가 이미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통영은 연안의 바다를 매립하여 부지를 조성하는 개발행위나 공해가 유발되는 공장 몇 개 유치하는 식의 낡은 토목이나 80년대식 행정으로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 오히려 통제영 완전 복원이라는 중장기적 플랜을 시민과 함께 모색한 후 유일무이한 통영만의 매력을 뽐낼 수 있게 도시의 품격을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시민참여형 고품격 행정으로 나가야 한다.

독일 작센지방의 주도(州都)였던 드레스덴이란 곳이 있다. 중세 고딕 건축물의 박람회장 같았던 이곳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대공습으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후 동독에 속하게 되어 폐허로 방치되다가 독일 통일 후 시민들과 국가의 노력으로 전쟁 전의 모습으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되어 200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수 백 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요즘말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드레스덴의 경우와 같이 대공습으로 인한 완전한 폐허 속에서 남은 기록과 사진 등으로 전쟁 전의 완벽한 복원에 성공하여 도시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낸 역사를 거울삼아 통영의 보물인 통제영도 완전히 복원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통제영과 청남루(남문)의 복원은 곧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과 혼이 스며있는 우리의 공간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통제영 복원사업은 단순히 건물 몇 동을 복원하는 토목 사업이 아니라 그야말로 진정한 통영(統營)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통영인의 자긍심을 더 높이는 역사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종합적 역사문화 정신복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구인후 통제사가 건립한 두룡포기사비에 적힌 바와 같이 여우와 이리가 뛰어놀던 황무지와 같았던 두룡포가 이경준 통제사의 안목으로 1603년 낙점되어 통제영의 대역사를 이룬지 420년이 흘렀다. 통영의 모태이자 정체성의 공간이라 할 통제영이 완전히 복원되어 시민과 더불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재탄생 될 때 삼도의 수군을 호령하며 바다를 지배했던 통제영의 영화와 같이 다시 통영도 힘차게 비상하리라 믿는다. 아무쪼록 청남루 실물 복원이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관철되어 통제영 복원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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