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입장 ‘더 나은 여건’ 따지는 것 당연, 의지 굳히면 마음 돌리기 안 쉬워

적극적 재정 지원 고성군, 스포츠클럽 육성 인근 체육영재 ‘용광로’처럼 흡수

수수방관인가? 아니면 속수무책인가? 통영 인구의 40%에 불과한 고성군이 지역 체육영재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면서, 스포츠 분야 거인으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반면 통영시와 통영시체육회는 이 모습을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지켜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것이라, 가까운 장래에 스포츠파워 측면에서 통영시와 비교불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지난 5월 울산광역시 일원에서 제52회 전국소년체전이 열렸다. 이 중 태권도 종목에서 경남은 남녀 35개 전 체급에 선수단을 출전시켜 금 3개·은 2개·동 4개라는 걸출한 성적을 올렸다. 이중 통영 출신 선수들이 올린 성적은 어떨까? 남자 초등부와 남자 중등부에서 고성군 선수가 각각 획득한 금메달, 은메달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통영선수들이 올린 개가(凱歌)다.

올해 소년체전 경남태권도 초등부 선수단은 남녀 각각 8개 종목 모두에 총 16명이 출전했다. 그중 6명은 예선탈락, 3명은 8강 탈락, 4명은 4강에서 탈락했다. 결승전에 3명이 진출해 3명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중등부는 남녀 각 한 명씩만 결승전에 진출해 모두 은메달에 그쳤다. 그 중 하나는 통영여중 선수(+68Kg)가 딴 것이고.

그런데 통영을 빛낸 어린 선수들이 자칫하다간 고성출신이 될 판국이다. 초등학교 졸업반인 메달리스트들이 내년 관내 중학교가 아닌 인근 고성군 소재 중학교로 진학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때문.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자칫 스포츠인재 유출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본지는 “통영 최초 소년체전 태권도 금메달 주인공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기사에는『A선수가 소년체전 +58Kg급 결승전에서...접전 끝에 26대16으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A선수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통영 출신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꿈이 아니게 된다』며 큰 기대감을 보냈다.

그런데 주인공 A선수는 올해 초 진작에 고성군 소재 중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어쩌면 내년 소년체전 프로필엔 통영 출신이 아닌 고성 출신으로 소개될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 올해 소년체전 출전선수를 포함한 몇몇 유망주들이 내년에도 고성군 소재 중학교로 진학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소문으로 ‘콜래트럴 데미지’를 입는 것은 체육관 관장들이다. 통영에서 체육관 운영하며 밥 벌어먹으면서 정작 선수들을 타지로 유출시키느냐는 비판을 받는 것.

통영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B관장은 “부모님들이 우리보다 더 전문가. 어느 학교가 어떻고, 어느 선수는 어떻고, 정보를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정도”라면서 “자녀의 장래와 관련된 일인데, 다른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못 한다”고 말한다. 통영시체육회 관계자도 “우리도 답답한 노릇”이라고 한다. B관장은 “관내 중학교 지도자들이 초등 선수들의 관내 중학교 진학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더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알게 된다.

통영교육지원청 체육담당 장학사는 “태권도체육관의 일이라서 관여하기 어렵다”면서 “고성은 스포츠클럽으로 운영되면서 고성군의 지원도 많이 받는 것은 물론 실력파 동료들도 다수 있어 실전경험을 꾸준히 쌓을 수 있는 점을 꼽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성군은 체육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고성군에는 태권도 선수를 2개 중학교에서 육성한다. 선수들은 수업을 마친 뒤 고성종합운동장 내 실내체육관인 월계관에 집결해 태권도클럽 선수로 함께 훈련한다고. 클럽에는 초등학교 15명, 중학교 15명 등 총 30명의 선수가 있는데, 중학교 선수 중 5~6명은 외지 출신이란다. 중학교 중 한 곳은 아예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어서 타지 출신 선수들에겐 안성맞춤이다. 통영 출신 A선수도 이곳으로 진학했다.

A선수의 모친인 C씨는 “지도자가 우리 애의 성장플랜을 설명해 주더라”며 “우리 애가 높은 체급이다 보니 비슷한 체격의 상대를 만나 실전훈련하기 어려운데, 그에 대한 대비책도 제시하더라”고 진학이유를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통영에서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애의 장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섭섭해 했다. C씨는 “우리 애의 성장에 관심을 조금만이라도 보였다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군은 A선수를 포함한 스포츠인재의 장래와 육성에 꾸준히 큰 관심을 보였다. 고성군 관계자는 “태권도 지도자 3명의 연간 인건비 9000만원을 포함해 1억5000만 원 정도를 태권도클럽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스포츠클럽에는 태권도만 있는 게 아니다. 고성군은 축구, 골프, 수영, 복싱, 야구, 씨름까지 모두 7개 종목을 종합해서 고성스포츠클럽을 지원하며, 고성군체육회가 운영한다.

고성군은 이 스포츠클럽에 연간 9억8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이는 고성군체육회에 지원하는 약10억 원의 예산과는 별개다. 이런 지원 덕에 고성군축구협회 산하 축구스포츠클럽은 U-12, U-15, U-17 구분해서 주말리그에 출전하고 있다.

B관장은 “A선수가 진학한 중학교는 선수회비와 기숙사비 등에서 부모부담이 전혀 없다”고 한다. 물론 기숙사를 고성군이 지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당국과 체육계, 그리고 고성군의 스포츠 인재 육성에 대한 열의로 의기투합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평가다.

통영시의 체육담당 부서 명칭이 ‘체육지원과’인 반면 고성군은 아예 담당부서가 ‘스포츠산업과’다. 스포츠를 단순히 관청에서 지원해 주는 객체로 보느냐, 아니면 산업적 파급효과를 이끄는 주체로 보느냐의 차이랄까?

관점차이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지역의 스포츠 유망주들은 서서히 고향을 등질지도 모른다. 통영시의 관료적인 뻣뻣함, 통영시체육회의 관성적이고 비창의적인 태도, 통영교육지원청의 무사안일주의적인 대응이 그런 경향을 더욱 키우고 있다. 내년 중학교 진학을 6개월이나 남겨두고서 벌써 ‘고성군으로 진학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현상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교육계와 체육계는 체육지도자들을 좀 더 적극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움직이도록 노력하고, 지자체는 말 뿐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확대해야 한다. 우리의 체육인재들이 고향을 버릴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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