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세포마을에 공유숙박지 '더 숨'을 개장한 이덕열(우), 이금희 부부
▲통영 세포마을에 공유숙박지 '더 숨'을 개장한 이덕열(우), 이금희 부부

처음엔 얼떨결에, 두 번째는 그리워서, 이덕열·이금희 부부의 맛나는 인생이야기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두 번이나 역이민 했고, 그 중 첫 번째는 귀국하자마자 고향이 아닌 통영에 정착했으며, 나중에는 3명의 지인까지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만든 역이민 전도사가 이젠 가는 이 마을에서 소규모 공유숙박업으로 새로운 인생길을 나서고 있다. 이덕열(66), 이금희(64) 부부가 운영하는 ‘더 숨’.

누구의 인생이던 영화나 마찬가지다. 70억 개 삶 하나하나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없이 무겁다. 내 삶은 고단하지만, 다른 이의 삶은 흥미진진한 이유다. 부부 모두 전북 전주 출신으로 대학 졸업 이후 만나 1984년 결혼한 뒤 고향을 떠나 남편은 직장생활, 부인은 피아노 레슨 하느라 경기도 부천에서 생활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수입은 괜찮았다. 90년대를 청장년으로 보낸 한국인이라면 IMF금융위기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부부도 마찬가지.

어려운 시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 미국 LA에 거주하던 이금희 대표의 친오빠가 손을 내밀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짐을 쌌다. 큰 아들이 중2, 작은 딸이 초3이던 이때는 2000년. 그녀는 식당을 하던 오빠 가게에서 서빙을 도왔고, 남편은 수학과외를 했다. 미국에서도 과외가 가능했다. 교포들의 자녀도 있고, 현지인 학생도 있었다.

그녀는 6년 만인 2006년 영주권을 취득했고, 이후엔 아동심리학 학사학위까지 받았다. 남편에게서 가능성을 본 학원운영이라는 목표가 있어서였다. 마침내 2007년 학원을 열었다. 캘리포니아 LA교외의 학군이 좋은 라크레센타. 학원도 밀집해 있는 곳이다. 미국수능인 SAT대비, 애프터스쿨 수업을 주로 했다. 100여 명 중 10% 정도는 미국학생이었다.

미국학생들은 과외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선입관이다. 수업에서 수학의 비중이 커서, 학교에서도 매일 2시간 이상 수업을 진행하고 숙제까지 내 준다. 학부모가 가르칠 수 없어서 미국학생들도 학원에 다니지 않을 수 없다. 또 미국에 근무하는 우리나라 외교관이나 대기업 주재원들의 자녀들이 미국학교에서 받는 수업관련 과외도 지도하고, 한국귀국 후 수준 높은 수학수업을 따라잡기 위한 과외 등도 했다.

남편의 수학수업은 인기 높았다. 일반적으로 수학하면 골머리를 앓거나, 진절머리를 내며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녀의 학원에 다니던 어떤 학생도 그랬는데, 나중에 그 학생이 대학에 갈 때쯤 “수학을 전공할 것”이라고 말할 때 보람을 느꼈다고. 수학을 재미있고, 쉽게 가르치는 남편의 소식이 지역신문에 기사로 실릴 정도였다. 그녀는 2012년에, 남편은 2015년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미국시민권 따자마자 내린 결정은 한국으로의 귀국이었다. 이른바 역이민(逆移民). 미국교육시스템의 변화영향이 컸다. 귀국 후엔 인천 송도신도시에 정착하고자 했다. 국제학교도 있고, 미국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학원 운영한 경험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고, 사업적으로도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문제였다. 10월 말쯤 도착한 직후부터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6시, 내 고향’프로그램을 즐겨봤던 남편이 기억을 되살리며 불쑥 “통영에 한번 가 보자”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보낸 이삿짐이 인천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갑작스레 통영에 왔고, 덜컥 미수동 아파트를 계약했다. 추가비용까지 들여서 국제이삿짐의 목적지도 통영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통영과 인연이 시작됐다.

새로운 성당에 다녔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날씨도, 풍경도,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다. 지인들 도움으로 과외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2년 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식당을 개업한 아들의 요청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온화한 샌디에이고는 마치 통영 같았다. 3년을 같이 일하다, 2019년부터 다시 유타주에 개업한 식당일을 도왔다.

불현 듯 2022년 3월 한국으로 두 번째 귀국했다. 처음엔 전북 진안에 정착하려 했다. 그런데 소를 너무 많이 키우는 곳이어서인지, 어릴 때 알던 고향정서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불만을 알던 통영의 지인들은 “통영에는 축사도 없고, 날씨도 좋지 않으냐?”고 유혹했고, 결국 굴복했다. 그렇게 통영에 다시 왔고, 계약한 집이 있는 곳이 세포마을이다.

지난 5월 완공한 1층 건물에는 ‘더 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편안하게 숨 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거실 겸 주방, 방 2개, 화장실, 썬룸(발코니), 바비큐장 등을 갖춘 아늑한 곳이 바로 ‘더숨’이다. 숙박비는 6인까지 30만원, 이후 1인마다 1만5000원 추가.

이금희 대표는 “처음 통영에 정착하고 광바위, 세포고개를 산책하면서 아름다운 마을경치에 감탄하곤 했는데, 바로 그곳에 집을 짓고, 정착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이덕열씨는 “만족도 90점. 겨울엔 앞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여름엔 바다에서 남동풍이 불어와 시원한 마을”로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며 웃었다.

그녀는 3번째 미국행을 계획할까? “언제까지 통영에 머물지는 나도 모른다. 2번이나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또 하지 말란 법 있을까?”라며 “그래도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들을 3명이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나는 역이민 전도사”라고 한다. 역이민 전도사 부부의 집에서 힐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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