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藝鄕)의 명성은 재정적(財政的) 부침(浮沈)에 상관없이 인고(忍苦)의 세월동안 예술혼(魂)을 불태웠기에 얻을 수 있었다. 여기 음악창의도시 통영의 이름값을 이어가기 위해 나선 청년사업가가 있다. 추억이 서린 동네 명정동 99계단 나들목에 자리 잡은 서피랑음악상자의 임재민 대표(29)가 주인공이다.

부산 출신으로 지난 2018년 11월 통영청년드림존 사업에 선정되면서 통영에 정착을 시작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오르골에 관심을 가졌고, 전공과목은 아니었지만 특강까지 받으며 열정을 키웠다”고 말한다. 오르골은 오르간을 뜻하는 네덜란드말(orgel)에서 유래했으며, 영어로는 뮤직박스(music box)인데 말 그대로 음악상자다. 자명금(自鳴琴)이라고도 한다.

적당한 간격으로 돌출한 핀이 박힌 금속 원통을 태엽에 감아 돌리면 이것이 금속판에 다양한 길이로 달린 금속 이빨들을 퉁겨서 음악소리를 내는 장치로 18세기말에 시계 장인들이 주로 제작했다. 에디슨의 축음기가 등장하면서 잊어버린 장치가 됐지만, 여전히 추억을 자극하는 아이템의 하나다.

“사업을 시작하고 저 역시 같이 배워 나가는 중”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임재민 대표의 서피랑음악상자는 오르골 제작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의 취향에 따라 오르골을 만들 수 있도록 원목박스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같이 배울 수 있다. 비싼 것도 있지만 부담 없는 가격으로 원목상자는 3만3000원, 종이상자는 3만원 오르골이 준비돼 있다. 오르골상자를 선택한 다음 외양을 그리고 주크박스에서 음악을 선택하면 핸드메이드 오르골이 완성된다.

서피랑음악상자에는 실린더오르골용 음악 20곡과 종이오르골용 음악 3곡 정도가 준비돼 있다. 현재는 토요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체험 할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musicpirang)으로만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체험시간 범위라면 언제든지 와서 1시간 30분 정도의 제작체험을 하고, 수제오르골을 가져갈 수 있다.

2019년은 사업 첫해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기대를 갖게 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임대표는 말한다. “구경 오는 분들은 많았는데 전부가 실제 오르골 구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세계가 흔들렸던 2020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방문객이 줄었고, 하반기 더 어려워지면서 결국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청년의 패기가 가장 필요한 때는 이런 위기를 맞아서가 아닐까? 임재민 대표는 올해는 2020년 들이려다 포기했던 휴대용 배럴오르골을 들일 계획이다. 좀 더 다양한 방문객 체험강습을 위해서다. 그리고 출장교육도 공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내 여러 초·중·고등학교로 출강을 했는데, 올해는 인근 고성·거제뿐 아니라 창원·부산까지도 마다 않을 생각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임재민 대표를 통해 통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통영하면 낚시로 유명하고, 유적도 많으며 먹을거리도 풍성한데 큰 도시는 아니어서 하루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고, 자주 방문하기는 어려운 곳”이 요즘 젊은 세대가 바라본 통영이다. 음악상자를 찾아온 체험객들도 “TV에도 나오길 래 기대를 하고 왔지만, 실제 서피랑은 99계단, 서포루, 꿀빵이 전부”라며 아쉬워한다고.

또 청년사업가로서 통영에 청년들이 방문하고, 거주하도록 하려면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고언(苦言)한다.

그럼에도 명정동 한 켠에 터를 잡은 임재민 대표는 “오르골 체험을 위해 재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작년에 어느 20대 통영여성 분이 그랬다”며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음악창의도시를 돌리는 나사의 부속이라도 된 듯이. 코로나19가 물러가는 날 명정동과 서피랑, 음악으로 축제의 장이 될 것을 기약해 본다. 이곳 음악상자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