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행복한 부부공방 '만듦'의 주인 공무진씨(좌), 오은지씨 부부
슬로우라이프를 추구하는 행복한 부부공방 '만듦'의 주인 공무진씨(좌), 오은지씨 부부

 가죽은 추운겨울을 이긴 고대 생존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가죽에 집착하는 것일까? 기억을 찾기 위해 타임머신은 필요 없다. 미륵산 봉숫골까지 발품이면 충분하다.

오래된 아파트 버스정류장 앞, 간판도 없는 건물 1층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곳이 가죽공예점 ‘만듦’이다. 통영남자 공무진씨(39), 고창여자 오은지씨(37) 부부의 일터다. 경찰행정학을 전공한 공무진씨와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오은지 대표는 2006년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서울에서 인연을 맺었다. 공부대신 사랑을 택한 셈. 아직 자녀는 없다.

어느 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죽공예’를 선택했다. 가죽공예를 택한 것은 오은지씨였다. 동네공방에서 1년짜리 강의를 듣던 중 그 매력에 빠진 것. 그 뒤 2년 동안 인터넷과 전문서적을 탐독하며 독학했다. 그렇게 전문가가 된 그녀의 첫 제자가 공무진씨다. 남편은 다른 일을 해볼까 고민도 잠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날 수는 없었단다.

 

봉숫골 아닌 다른 곳 생각? 노!

사실 부부는 앞으로 10년쯤 뒤에야 가죽공방점을 개점하리라 예상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2018년 통영시가 청년창업지원프로그램을 공고했길래 곧장 결정했다. 장소는 처음부터 봉숫골이었다. “거리가 너무 예쁘니까.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이라고 공무진씨는 대답한다. 오은지 대표는 더했다. “조용해서 작업에 몰두하기 딱 좋고, 기분전환이 필요하면 미륵산만 가면 되니까”라고 말한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남편은 바다를 떠날 수 없고, 부인은 산이 있어야 하니까. 죽림이라면 돈이야 더 잘 벌리겠지만 구 시가지만의 매력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만듦’을 개점하면서 봉숫골 아름다운 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뿌듯한 기분도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

2019년 2월 본격 개점해 2년 여 지났으나 사업초기, 팬데믹이었으니 매출은 실망스럽다. 손님 중 카페를 겸업하라고 조언하는 분도 있지만, 인근 카페업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진 않다. 공생(共生)해야 하니까. 명품가방 카피해 달라는 주문도 자주 받는데, 불법이라서 무조건 거절한다. 가방은 20만원~40만 원대까지 형성. 지갑은 5만원~15만원. 카드지갑 2~3만, 키링 2~4만, 팔찌 2만 원대, 명함꽂이 3만 원대, 트레이 5~8만 정도로 판매한다. 단, 소재나 디자인, 방식에 따라 가격차이는 크다. 글쎄, 체질이 아닌지 애고 닳고 팔진 않는다고.

올해부터 원데이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카드지갑 정도가 딱이다. 욕심내서 가방 만들겠다는 손님은 1년이 지났건만 아직 미완성이다. 전문가가 만들어도 한 달 넘을 수 있다. 수업료 역시 천차만별이다.

 

 

목표? 없다! 슬로우라이프 추구

2019년 봉숫골 축제 때 분명히 가죽공예에 이끌려 방문했던 손님이 보름 쯤 뒤 다시 와서는 “야생생활 부시크래프트인 부싯돌 휴대용가죽커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받은 적 있다. 아마 외국산이라 구하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사진까지 보여주며 세세한 디자인을 요구하길래 며칠에 걸쳐 만든 뒤 싼 가격에 판 적이 있다. 몇 달이 지나서 여자친구와 다시 온 그 손님이 이제는 자신의 여친이 사용할 ‘부싯돌 가죽커버’를 추가 주문한 적이 있다. 아마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공무진씨는 “조선업 활황기에 통영에 정착했던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머물면서 새로운 소비자층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덕분에 수제맥주가게, 플라워아트가게 같은 대도시형 업종이 유지된다는 것. 어쩌면 통영의 청년정책에 영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급해 질 수 있기 때문에 목표를 만들지 않는다”는 ‘만듦’의 주인장 두 사람. 부부가 추구하는 것은 슬로우 라이프다. “부부 둘 다 머리카락이 희끗해질 때까지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그들의 말에서도 영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주소 : 통영시 봉수로 83, 1층 2호(봉평동)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