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화씨, 조영미씨(이장부인), 김태근 이장, 류종환 계장, 정미경씨(왼쪽부터)
이선화씨, 조영미씨(이장부인), 김태근 이장, 류종환 계장, 정미경씨(왼쪽부터)

견유마을 김태근 이장(50)이 학교장이고, 류종환 어촌계장(59)이 교사 역할을 한다면 마을전체가 나섰다 할 만하다. 학생들이 마을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시 마을주민들에게 되돌려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재능기부’이며, 인근 학교가 마을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마련하니 이 어찌 진정한 마을학교라 하리 않으랴. 바로 견유마을 창의공작소.

 고향마을 발전위한 일편단심

사실 창의공작소 마을학교는 20여 년 전 귀향(歸鄕) 뒤 고향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김태근 이장과 류종환 어촌계장이 머리를 맞댄 끝에 출발한 아이디어다. 견유마을은 그간 어촌뉴딜사업 도전에만 두 차례 고배, 어촌권역개발사업에만 세 차례 고배를 마셨다. 평가위원들이 실사를 와서 하는 말이 “여기는 더 이상 발전할 게 없어 보인다”였을 정도. 김태근 이장은 “겉으로는 도시화된 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감점요소였다”며 “번지르르 보여도 속사정은 여느 어촌과 같다”고.

어촌뉴딜·권역별개발 같은 장기목표 아래 작은 사업부터 경험 쌓자는 생각에 통영교육청 마을학교에 지원했고 선정됐다. 무엇을 가르칠까? 나무·냅킨·레진·천·가죽공예, 아로마캔들, LED플라워 등. 그럼 누가? 놀라지 마시라. 김태근 이장은 목공예와 레진공예자격증 보유자다. 1.3톤 통발어선으로 매주 2~3회 조업 나가는 류종환 계장은 목공예와 천아트 자격증이 있다. 어촌계장 부인 정미경씨도 마찬가지. 이장 부인 조영미씨는 공예자격증만 50개를 보유한 견유마을의 보배다. 푸드테라피 자격증보유자인 마을청년 이선화씨까지. 여성3인방은 모두 상담심리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

 대거 150명 신청, 감사의 특강까지

마을학교에 선정됐지만 걱정뿐이었다. 견유마을어민회관이 교실인지라 교통이 불편해 많은 학생들을 기대 못했고, 기껏 충렬여·중고 학생들만 올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긴 “시집 온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마을회관 2층을 찾았다(조영미씨)”거나, “2013년에 개관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에어콘을 켰다(류종환 계장)”고 할 정도니. 그래도 웬걸. 15명 모집에 무려 150명이나 지원해서 깜짝 놀랐다. 거절당한 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한지라 6~7월에 2번, 각각 40명씩을 대상으로 특강을 개최하기도.

충무고(1명), 동원고(2), 충렬여고(5), 충무여중(3), 동원중(1), 충렬여중(3) 등 총 15명에, 여학생이 11명 절대 다수였다. 공예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많은데, 학생들 시간에 맞춰서 가르치는 곳이 없다보니 생긴 일이리라.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강의시간인데, 이제 강의실은 소통과 웃음의 장터가 됐다. 그것도 9월로 내년을 기약해야지만.

김태근 교장(이장)은 “아이들이 꿈 꿀 수 있는 마을 만들었으면” 바란다. 이미 반쯤은 성공한 셈이랄까. 얼마 전 추석연휴 앞두고 한 학생은 절친 생일파티도 마다하고 수업 받으러 왔단다. 마치 대학생이 된 것 같은 중년의 교장·교사들은 동아리활동 하듯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양이라.

 소통하며 증폭하는 긍정의 에너지

고등학생 8명은 어느새 VFW(Volunteers For the Weak)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약자들을 위한 자원봉사대’라는 뜻인데,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천연비누 만들기 등을 재능기부 교육하고 직접 선물로 나눠준다고. 이에 질세라 견유마을학교도 어촌계와 함께 ‘장화신은 화가’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장화는 어부를 상징하고, 화가는 벽화작업을 의미한다고. 마을진입로에 벽화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학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또 기증했고, 그림들은 벽화타일로 재탄생했다.

그러자 이번엔 중렬여중에서 견유마을에 자유를 상징하는 새 조형물을 마을벽화공간에 기증하기로 했다. 견유마을학교에서 시작한 긍정의 에너지파가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되돌아와서 주변 전체 공동체를 휘감싸는 모습, 이것이 마을학교가 지향하는 진정한, 당초엔 상상도 못했던, 성취가 아닐까,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조영미씨는 “어떤 학생이 자정이 되도록 갈 생각을 않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대화 상대가 없어서’라고 말하더라”며 “원래 청소년 문화공간·쉼터가 부족한 터에 코로나19로 인해 갈만한 장소가 더 줄어들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또 “재능기부를 하며 선생님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역시 많이 느낀다”고.

학교가 공교육을 책임지고, 학원은 학업성취를 측면 지원한다면, 마을학교는 학교 또는 학원이 가르칠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학생들의 가슴 깊숙이 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견유마을 창의공작소는 그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는 것 같다. 만일 영화였다면 작품상을 받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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