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남동 루지탑승장 인근 강동석목가구공방 강동석 대표

 

나무는 우리에게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다른 어떤 재료도 전해줄 수 없는 따뜻함, 편안함, 안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목재(木材)다. 세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남자가 목공(木工)에 자신의 전부를 건 것이 충분히 납득을 하고도 남는다.

케이블카 탑승장이 발치에 있고, 통영루지가 코앞인 곳에 위치한 봉평동 강동석목가구공방(발개로 164-20).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는 만큼 강동석 대표(39)의 태도는 진지함으로 가득하다. 물론 약간의 여유로움도. 그가 겪어온 드라마틱한 삶을 조금 들여다보면 지금의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통영 출신으로 남포초, 통영중, 충무고를 다닌 그는 고3때 입시미술을 시작해 대구예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고2때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놀다가 고3때 새로 시작했지만, 원래 강동석 대표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하고 싶었던 분야였다. 다른 아이들은 만화 또는 애니 흉내나 내는 유치원 시절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려서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나 했지만 2008년 불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천만다행으로 갈비뼈가 골절되지 않았고, 머리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며, 척추손상마저 없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나머지 전신의 뼈가 어스러질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신기할 정도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수술을 무려 11번이나 했고, 재활과 요양으로 제법 세월을 보냈다.

결국 복학도 했고, 대학도 졸업했다. 그런 큰 사고를 당하면 인생관이 변한다고 하는데 당시는 아직 어려선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졸업 뒤에는 벽화를 그려주면서 생계를 이어가다가, 건축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던 2010년쯤 마침내 목공을 알게 됐고 흥미를 느꼈다.

그러던 2011년 두 번째 인생의 고비를 만났다. 이번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수술도 받았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고, 젊은 나이 덕분인지 다시 건강을 찾기는 했다. 이때 인생관이 바뀌었다. 성격이 바뀌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었는데 말도 행동 모두 차분해졌다.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살아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있어서 두 번이나 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비로소 매력을 많이 느꼈던 나무 다루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고 생각한 강동석 대표는 지인의 소개로 이름을 얻어들은 김병수 가구명장을 스승으로 삼기 위해 진주로 갔다. 1년 정도는 문전박대 받았을 것이라거나, 3년 정도는 청소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경우다.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더니 흔쾌히 전수를 허락했다고.

통영에서 출퇴근하며 1년 동안 못 없이 목재를 결속시키는 ‘전통 짜맞춤’ 기법을 전부 배웠다. 전통목공 기초를 배운 것인데, 사실 ‘기초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는 다 응용이고, 혼자서 해내야 한다. 1년의 전수를 마치고 나서는 연명예술촌 작가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때 알게 된 스님들로부터 사찰용 가구 등을 제작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때 큰 오두막도 만들었다. 오두막이라고는 해도 이동이 가능한 대형목조주택이었다. 큰 애착을 가졌는데 오두막 매각대금은 창업자금에 보탤 수 있었다. 통영시로부터 청년창업 지원을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2020년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강동석 목가구공방’을 시작했다.

현 장소는 케이블카나 루지 체험 관광객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로지 교통접근성을 고려했다. 건물주도 식당이나 카페 같은 요식업종은 별로 반기지 않는 분인데다가 이 위치에, 이 정도 규모를 생각하면 ‘구한 것이 행운’이다.

강동석목가구공방의 주요 세 가지 업무는 작품판매, 제작교육, 제작활동이다. 목공제품은 가격이 만만찮다. 앉은뱅이책상 ‘서안’(100만원), ‘문갑’(2~300만원), ‘사방탁자’(3~500만원) 정도는 저렴한 편이다. 재료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회의용 및 서재용 탁자는 500~800만 원 정도며, 2층 장롱은 1000만원이 넘고 기간도 6개월이 넘는다. 값어치가 10억이 넘는다는 조선시대 2층장을 모방한 레플리카 2층장을 2500만 원에 판매한 적도 있다. 1500만 원 짜리 탱화보관함을 제작한 적도 있다.

제작교육은 취미반과 전문가반의 두 클래스가 있는데, 조만간 원데이클래스 개강을 준비 중이다. 현재 각 클래스별로 1주에 2번씩 오전 10시, 오후 7시 열린다. 한 클래스 강의시간은 3시간 정도다. 1개월~1개월 보름 정도의 취미반 수강비는 35만원이다. 취미반에서는 간단한 차판(찻잔 받히는 판)을 만드는데, 청강생 대부분 여성이라고. 전문가반은 1년 동안 총 6단계의 과정을 밟는데 기초반은 40만원이다. 연장 쓰는 법, 공구 다루는 법, 날 가는 법, 톱질, 끌질, 대패질 등 모든 것을 정식으로 배운다.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숙달하는 과정이다. 최대 수강인원은 12명까지나, 알 찬 교육을 위해서는 8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신청은 010-3876-8373으로 하면 된다.

딱히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미혼상태인 강동석 대표는 가구, 집, 배 등등 뭐라도 상관은 없지만 ‘인생작품’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또 대한민국공예대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해 평가를 받고 싶다. 회화에 재능이 있었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만큼 그의 목공작품에는 회화적 요소가 들어간다. 재료의 특징을 활용하고 약간의 기교를 더해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작품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인기제작자인 것 같다. “지금까지 전부 200~300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대부분 판매하고 지금 남은 것은 5~6개 정도”라고 말한다. 톱밥이나 나뭇조각이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을 것이라고 예단한 취재기자의 눈에는 ‘굉장히 깨끗하다’고 느낀 그의 작업실이지만, 강동석 대표 스스로는 “오늘은 굉장히 지저분한 상태”라고.

조선목공예의 전통을 이어가는 독신 청년의 작품에는 인생의 달콤씁쓸함을 모두 맛본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숨어있으리라. 그리고 그의 스승이 그랬듯이 언젠가는 강동석 대표도 자신의 스킬을 전수할 누군가를 만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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