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향으로 통영을 선택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10년 넘는 직장생활 후 정착할 곳이 통영일 줄이야. 명정동 건어물 카페 ‘인 서피랑’ 김현철 대표(41.사진)에게는 통영하고도 명정동이야말로 가족과 함께 끝까지 지낼 안식처다.

5~6년 전 선상낚시 하러 처음 통영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강렬했다. 특히 전통시장에서 거나하게 먹은 신선한 회초장은 더더욱. 그땐 몰랐다. 설마 치열하기 그지없는 서울생활에 염증이 날 줄, 더구나 지방으로 여유 있는 생활터전을 찾아 나설 줄. 특히, 통영일줄.

 조건은 바다, 낚시, 섬 아닐 것

덥석 통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세 가지 전제조건이 있었다. 우선 바다가 있어야 했고,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어야 했으며, 그렇다고 섬이어서는 안 되는 조건. 제주도 출신이라 섬은 왠지 갇히는 느낌이라서. 전남 무안은 너무 시골이었고, 전남 여수는 너무 도회적이었다. 통영이 최적이었다. 바다는 물론 시골의 인심도 있고, 도시적인 면모까지 갖춘 곳이니.

몇 달을 직장 다녔으나 결국 창업을 결심했다. 명정동 서피랑길이 마음에 들었다. 99계단도. 동피랑에 비해 잠재력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름 남짓 물색하는 동안 현재의 영업장소가 눈에 띄었다, 영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건어물판매점과 카페를 같이 하고 있었다, 벽을 사이로.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에게 연락했더니 이야기도 쉽게 통했다. 그렇게 지난 7월 ‘인 서피랑’ 카페를 개업했다.

김현철 대표는 “아마 인 서피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냉동 창고가 있는 카페일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대형 냉동 창고를 실내에 둔 유일한 카페일지도. 원래 건어물 보관용이었는데, 지금은 과일주스·샤베트·빙수·얼음·자재보관용으로 활용 중이다. 넓어서 아주 제격이라고.

 제일 먼저 한 일? 주민들과의 소통

김현철 대표가 개업하면서 가장 먼저 결심했던 것은 ‘서피랑 마을과 함께 가는 것’뿐이었다. 관광객에만 맞추지 않고 마을 어르신들을 배려해 커피가격을 2500원으로 했다. 이것도 비싸다고 말씀하시지만. 5000원 넘게 받아야 할 과일주스도 4000원 정도에 판매한다. 그 덕분에 지역주민들도 제법 많이 방문해 주신다. 오랜 시간 계시면 가끔 불편함 느끼련만, 김대표는 “오죽 가실 데가 없으면 여기 오실까” 생각한다.

‘인 서피랑’을 통해 서피랑이 전국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만큼, 보통의 카페상품 외 통영을 상징하는 물건도 같이 판매함이 당연지사. 동백이·누비가방·해초비누·LED오르골 등이 있는데, 특히 누비가방은 장애인복지관에서 만들어 의미가 크다. 지난여름 히트작은 ‘과일주스파우치’였다. 냉동 창고를 십분 활용, 봉지에 넣은 과일주스를 얼려서 음료구매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 드렸더니, ‘득템했다’며 무척 좋아하더라고.

김현철 대표는 카페의 콘셉트에 맞춰 조만간 건어물 상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일정량의 아귀채·아귀포·쥐포·멸치 등 건어물을 투명플라스틱 케이스에 담아 판매한다는 것. 통영에 놀러 와서 건어물을 살 경우 들고 다니기 어려운데, 휴대 간편하고 꺼내 먹기도 쉬워 제법 인기상품으로 기대된다. 

서피랑길, 경리단길·홍대 잠재력 충분

김현철 대표는 인 서피랑 카페의 모토로 “기억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곳이 있다”를 삼는다. 근데, 혼자만으로는 힘들다고. 인근에 다양한 가게, 공방, 상점들이 생기면 서로 협업하고, 서로 홍보해서 서울의 경리단 길이나 홍대거리처럼 핫플레이스가 되기를 바란다. 블루투스 즉석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고, 전시하는 것도 통영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통영시가 좀 더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인근에 청년센터가 있고, 몇 천 명이 다녀갔다지만 김대표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창업지원을 해 주는 것도 좋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자생력이 없다보니 가게 문은 닫혀있기 일쑤고, 결근도 잦으며, 주민들과 소통도 안 된다고. 통영시가 70~80년대 거리감성을 지켜주고, 청년들은 자립심을 가지고 창업에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이 거리엔 음식점도 더 필요하고, 옛날식 이발체험장소도 필요하니까. 무엇보다 서울 대비 고정비용 지출이 적은 이 곳 명정동, 잠재력이 충분한 서피랑길, 인 서피랑 카페 김현철 대표가 머잖아 경기도에 따로 사는 자신의 가족을 불러들이겠노라 자신하는 이유가 이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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