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선박 만들던 기름 묻은 손은 이제 양념장 맛깔나게 버무리고, 블록 이음새 붙이던 수천도 불꽃용접은 찜요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용접기술을 배운 뒤 청춘을 외국의 작업현장을 누빈 뒤, 통영관광 새로운 총아 통영루지 건설에 자신을 던져 넣은 30대 장년이 한려찜 식당을 개업하며 K-푸드, TY-푸드 전령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양진욱 대표(37.사진)가 그 주인공.

양진욱 대표가 태어난 곳은 마산이다. 본적지가 한산도인 그가 통영에 온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충무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그가 배운 기술은 조선소 용접이었다. 그거도 특수용접. 이왕 배운 기술 좀 더 배우고 싶어 직업학교에 들어갔고, 우연히도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만났다. 영어를 배울 수도 있고, 벌이도 한국보다 나았기 때문.

이때가 2008~9년쯤인데 당시 가장 수월하게 갈 수 있고, 기회가 많았던 곳은 호주였다. 기량이 좋고 영주권까지 받으면 시간당 100~130호주달러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당시 1호주달러는 한화로 1000원 이상이었다.

그렇게 호주로 날아갔는데 눌러앉으려던 것은 아니었단다. 어린 나이 탓이었는지 그저 ‘마음에 들면 더 머무르고, 아니라면 돌아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이런 종류 일은 사기 당하기 십상이었는데, 직장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니까. 당시 12~3명이 함께 갔는데 대부분은 일자리를 못 구하는 바람에 1년도 못 버티고 그냥 귀국했다.

양진욱 대표는 운이 좋았다. 혼자 일자리를 찾다가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하청업체에 취업할 수 있었다. 시드니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의 모리셋 지역 석탄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했다. 벌이는 좋았다. 한국보다는 최소한 3배 이상 받았으니. 2년 정도 근무하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다른 외국계기업 마케팅 담당으로 직장을 옮겼다. 여기서 4년간 근무했다.

여동생과 함께 살던 홀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2015년경 귀국해, 마침 스카이라인 루지 건설현장에 통역 겸 엔지니어로 채용되면서, 주요 시설 대부분 건설에 참여하기도. 완공 뒤에도 유지보수팀 근무까지 3년 정도 있다가, 내 장사를 하고 싶어서 퇴사했다.

양진욱 대표의 짧은 요식업계 커리어를 우습게보면 큰 코 다친다. 하필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때에 개업했냐고 비웃어도 안 된다. 양대표는 “찜이란 음식이 유행을 타지 않고, 모든 연령층이 다 좋아하며, 특히나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 운영한다는 점 등 젊은 나이의 내가 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코로나19유행에도 과감히 개업을 밀어붙였는데 “설마 금방 잠잠해질 줄 알았지, 이렇게나 오래 갈 줄은 몰랐다”고.

그런데 한치 앞 일을 모르는 법. 배달하지 않는 품목이 없고, 배달 못하는 장소가 없으며, 코로나19 수혜종목이 배달업종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 8월 12일 영업을 개시했는데, 주문고객 중 현재까지 별점평가를 한 140명 중 무려 136명이 ‘별 다섯 개’ 만점을 줬다. 양진욱 대표는 “초보가 얼마나 음식솜씨가 좋겠냐마는, 아마도 푸짐한 양을 좋게 평가하신 것 아닐까?”라며 겸손모드.

무전동 지금 ‘한려찜’자리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던 충무김밥집이었던 점, 이미 5년 전 폐업한 ‘한려찜’이라는 식당을 아직도 기억하는 손님이 있었던 점도 좋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물론 양진욱 대표가 포장용지에 새긴 문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직하게 건강하게”에서 보여주는 그의 마음가짐에 비하랴.

현재로는 사장이자 주방장 1인2역을 맡고 있는 양진욱 대표는 추석 전후로 홀도 할 계획이다. “식당이 번창해서 성공하면 내 건물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양대표. “제대로 된 한국레시피를 갖춘 한식당을 외국에서 열고 싶다”는 그. 용접공과 마케터, 루지유지보수반까지 거친 양대표가 만드는 아구찜, 알곤이찜, 대구뽈찜, 아구해물찜, 스페셜찜이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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