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거제대교의 거제입구쪽 교각. 향후KTX장문역의 모습이 이와 비슷할 지 모른다
구거제대교의 거제입구쪽 교각. 향후KTX장문역의 모습이 이와 비슷할 지 모른다

 탐욕의 시대! 100년, 200년 뒤 우리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이렇게 정의하지 않을까?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잊고 오로지 탐욕에 근거해 어리석은 결정들을 곧잘 해버린 그런 시대로 말이다. LH공사사태, 해운대 엘시티특혜뿐 아니라 심지어 광고에까지 등장하는 ‘여러분, 대박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알 수 있듯.

남부내륙KTX 종착지로 거제 상동이 유력하게 거론되자 인근 아파트 값이 들썩거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종착역이 온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노선이 지나가는 거제면 일부 주민들은 종착역이 온다면 몰라도 철로만 지나는 것이라면 절대 반대라고 주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가격의 등락여부다. 교각만 지나면 부동산 값이 떨어질 테니까. 그러면서도 거제면에 종착역이 들어오는 것은 찬성이라고 한단다. 물론 마타도어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고성역을 지나 용남면 원평을 고가철로로 통과한 다음 용남면 장문리에 통영정거장이 들어설 방안이 유력해지고 있다. 대안마을과 삼봉산을 터널로 지난 다음 연기마을에서 견내량을 해상교량으로 건너 거제노선으로 연결되는 방안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경유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주민들의 이런 반발을 ‘몸값불리기’로 인식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주자금을 많이 받아내려는 저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항상 발생하는 역공작일 수도 있다. 좋다,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적어도 이들 주민들의 반발은 평생 살아온 터전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감에 근거한다.

통영은 자타 인정하는 예향이다. 숱한 문화예술인을 배출했고, 지금도 그 예술DNA는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통영은 남해안 해양관광의 중심도시다. 한려수도 바닷길의 중심으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는 칭찬의 비유조차 자존심 상한다고 느낄 정도다.

KTX의 길이는 어느 정도 될까? 동력차량 포함해서 6~7량이면 전장 150m쯤 된다. 정거장에서야 속도가 빠르진 않겠지만, 만석일 때 하중까지 고려하면 고가철로와 정거장 교각은 높고 튼튼하게 지을 수밖에 없다. 예술의 고장, 아름다운 한려수도를 기대하며 통영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괴물처럼 거대한 정거장을 마주하면 기뻐할까 아니면 실망할까? 아니면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을까? 독자들이 각자 상상하시라.

 

주민들이 오히려 백년대계 망친다?

국토교통부 KTX담당자들은 ‘정거장은 도심지에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거장이 건설되는 바람에 발길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예산낭비사례로 지적받는 곳이 전국적으로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성에는 송학리에, 통영에는 장문에, 거제에는 상동에 건설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를 비난하는 주체가 바로 국민과 여론임을 생각해보면, 도심지와 떨어진 곳이라도 해당 지역주민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선택한 곳이라면 비난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뒤집어보면 지역의 백년대계를 망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당사자의 하나가 지역주민이라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거제 상동 아파트주민들은 거제 종착역이 상동에 건설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는 계룡산을 터널로 지나온 KTX가 종착역 부지로 가려면 아파트 숲을 관통해야 하는데, 이 경우 소음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하락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고속철이 아니라 저속철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고성~통영구간이 14.8Km, 통영~거제구간이 12.8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고속도를 내기 위한 역간 최소거리가 57Km라고 한다. 총13Km에 불과한 마산역~창원역~창원중앙역의 실패사례가 이미 있다. 도심지에 정거장이 가까워야 한다는 것은 주민들의 탐욕에 정부가 편승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건설반대? No! 미래를 보자

이쯤 되면 꼭 등장하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하지 말자는 것이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서울 및 수도권을 2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교통수단건설을 반대하는 관광도시가 있을까? 절대 아니다.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받았는데 반대일 리가 없다.

하지만 면제받았다고 해서 할 말까지 말라면 안 된다. 정부에서 제시하는 방안을 두말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지나치다. 통영시는 왜 좀 더 일찍 공개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우리 지역이 원하는 최적의 장소와 노선을 정부에 제안하지 못했는가 묻고 싶다. 왜 인근 지자체와 최적의 정거장 위치와 노선에 대해 협의하지 않았는지 따지고 싶다.

통영과 고성은 하나의 역이어도 충분하다는 여론도 상당히 많았다. 시기적으로는 좋지 않았다. 2019년 보선, 2020년 총선이 있었고, 통영과 고성 중 한 곳은 정거장을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간 큰’ 후보가 있을 리 만무하니까. 결국 발등에 불 떨어진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탐욕에 부화뇌동했다. 하긴 정점식 국회의원이 TV토론 당시 밝힌 ‘광도면 바닷가에 건설해 정동진역처럼 명소를 만들겠다’는 발언도 기억에 가물가물 하니까.

진정 백년대계를 꿈꾼다면 통영과 고성에는 하나의 역사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통영시와 고성군은 행정통합을 해야 하고, 그 중간지역 행정신도시를 건설할만한 곳에 KTX역사를 건설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주민들은 줄기차게 복선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의 장소는 복선화에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추정될 만큼 협소하다. 가까운 장래 복선화를 위해서라도 다른 부지를 물색해야 하지 않을까?

섬에 고속철도가 연결되는 사례가 일본 또는 세계적으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거제도까지 들어가야 한다면 거제 오량마을을 거쳐 사곡으로 가는 것이 최상이지 않을까? 이 곳은 미국FDA 지정해역은 아니다. 그래도 어업권과의 충돌은 있을 수 있다. 운행상 안전문제로 인해 교각 사이 간격이 좁아져야 한다면, 선박의 이동을 방해할 수도 있다. 공사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설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만일 이 해상구간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속철도 해상코스가 되지 않을까? 2022년 완공예정인 중국 푸샤고속철도는 메이저우만을 통과하는 해상철교구간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중국과 상황이 다르다.

그래도 통영과 고성역을 단일화하는 조건으로 해상노선을 건설한다면 각 지역별 민원, 어업유산 지정해역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고, 복선화 가능성까지 열어놓으며, 천혜의 해상코스로 명물이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된다. 그러면 후손들이 지금을 탐욕의 시대로 비판할 것이라는 걱정을 좀 덜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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