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통영시청에서 노선안 규탄집회를 하는 지역민들
  지난달 31일 통영시청에서 노선안 규탄집회를 하는 지역민들

남부내륙고속철도의 고성-통영-거제구간 노선 계획안이 처음으로 공개됐을 때 지역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달 10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남부내륙KTX 관련 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공청회 자리에서다. 이전까지 지역주민들의 관심은 통영역사의 위치가 어디로 정해질 것인가에 쏠렸었는데, 이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돼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국토교통부의 노선안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공청회에서는 두 개의 노선안이 소개됐다. 그중 한 노선안에 따르면 고성역에서 출발한 KTX는 동원중학교와 코아루아파트의 가운데를 통과해 고가도로 형태로 원문을 가로질러 역시 고가형태의 통영장문역에서 멈춘 다음 대안마을을 터널구간으로 통과하고 오촌마을을 거쳐 연기마을에서 견내량을 건너 거제방면으로 향하도록 돼 있다. 다른 노선안은 광도면사무소가 있는 노산마을 쪽으로 와서 앞바다의 이도(섬)를 경유해 신리마을 남단을 통과하는 해상구간을 지난 다음 오촌 및 연기마을을 거쳐 거제방면으로 가는 방안이다.

주민들은 노선결정에 민의가 반영될 것으로 믿었다. 올해 초 주민설명회 때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의견서를 국토교통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실망감과에 분노는 평범한 지역민을 투사로 만들었다. 분개한 주민들은 철도노선통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달 15일 통영시청에서 처음으로 성명서를 발표했고, 지난달 31일에도 역시 통영시청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다.

가장 크게 분노하는 곳은 원문마을이다. 원문마을 주민인 김옥자씨는 아예 철도노선 통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자처할 정도다. 아마 같은 통영시민이라도 원문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크게 많지 않을 것이다. 14호 국도를 따라 원문고개를 매일 넘어서 출퇴근하는 시민이라도 그 언덕 아래에 원문마을 주민들이 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못한다.

 

원문마을, 고가철로로 완전고립화

해병대상륙작전기념관에서 우회전해 죽림신시가지 해안변으로 지름길을 선택하거나, 용남면 청구아파트 방면으로 가는 운전자 역시 바로 그 아래 원문마을 진입로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문마을은 그렇게 고립된 곳이니까. 심지어 원문마을조차 용남면 원문과 광도면 원문으로 갈라져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14호 국도가 앞마당을 지나고 있다면 2005년 개통한 통영대전고속도로는 마을의 뒷마당을 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바라보는 원문마을은 그저 눈에 띄지도 않는 조연배우 아니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여기에 군도 7호까지 마을을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으니 이것을 ‘감싸준다’는 표현보다는 ‘포위하고 있다’는 표현이 꼭 맞아 떨어진다. 그렇게 이미 진동, 소음, 비산먼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주민들인데, 한발 더 나아가 KTX교각이 마을을 관통하는 것을 두 눈뜨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유산지정vs교량건설, 모순된 정책 비판

용남면 대안마을 주민들은 삼봉산에 터널구간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식수원이 파괴될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사실 대안마을 주민들은 KTX노선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근 지역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주민들이다. 대안마을주민들은 인근 삼봉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뿐만 아니라 농업용수로도 사용한다. 만일 삼봉산에 터널이 개통이라도 되면 자연이 주는 혜택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용남면 연기마을 주민들은 한편으로는 국가중요어업유산 해역으로 지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해역에 철도교량 건설계획을 세우는 모순된 국가정책을 우선적으로 비판했다. 연기마을 앞바다인 견내량은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돌미역 산지다. 물살이 거친 좁은 해협, 적절한 수온 등이 돌미역 특유의 식감을 더 길러주는데, 제일 특이한 것은 10m가 넘는 긴 나무장대(트릿대)를 이용, 미역종자를 훼손하지 않는 이곳만의 채취방식이다. 해양수산부는 이 지역 고유의 돌미역 채취방식을 작년 7월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하고, 복원과 계승 작업에 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가 견내량을 가로지르는 KTX교량건설을 계획한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이미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지나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노후교량인 거제대교의 교각이 해류의 흐름을 막고, 좁고 물살 거친 곳이라 어선사고마저 자주 유발한다며 철거를 바라는 실정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가까운 해역에 교량을 건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한 도시의 개발계획도 백년대계를 바라봐야 하는데, 하물며 국가정책이랴. ‘마을을 갈라 찢어놓고, 수원지를 파헤쳐 놓고, 국가의 중요한 어업유산이 전해오는 해역을 후비적거리는 국가정책은 과연 무엇을 위하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지역주민들은 던지고 있다. 예타 면제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예산 한도 내에서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지역주민의 뜻은 명확하다. 기왕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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