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지에서 바라본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

문화예술인 복리증진 조례추가는 상징적, 개별사업에서 구체화, 국보급 양성엔 오랜 시간 걸려

예향 통영은 오늘날의 노력은 기울이지도 않은 채, 선조들의 찬란한 유산만을 소모하며 자랑하기에만 급급한 과거 지향적 허울뿐이라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안타깝게도.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그다지 창작열정을 내뿜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예술적 열정을 불태우지만 알려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으며, 둘 다 일수도 있다.

어쩌면 천재적 창작 혼을 가진 문화예술가들이 유독 20세기에 많이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불과 3~5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기는커녕 그들의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진 않았을까?

‘제2의 국보급 통영 문화예술인 양성·지원’을 위한 문화예술인 복리증진 조례제정. 일견 거창하게 들리는 천영기 통영시장의 문화예술 관련 주요공약을 이번 호에 해부한다. 더불어 이순신 테마역사체험 프로그램 개발공약과 근대역사문화 공간재생활성화사업 추진의 내용도 살펴본다.

저런 공약으로, 구호만으로 국보급 문화예술인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문화예술분야라는 것이 여타 분야와는 다르게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반드시 뛰어난 예술가가 배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 오히려 정서적 불안, 극도의 가난함, 개인적 고난, 불안한 대인관계, 현실도피적인 괴팍함, 꺾이지 않는 고집 등이 불타오르는 예술혼의 연료로 더 필요하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과거에서 깨닫곤 하니까.

 

조례개정하면 국보급 문화예술인이?

사실 문화예술인 복리증진 조례는 이미 있다. 이 조례를 개정해 문화예술인의 권리보호 및 복리증진을 위한 근거 마련하겠다는 것. 특히나,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예술인의 복리증진 및 권리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고 통영시는 인식하고 있다.

이 공약은 언제 달성된다고 봐야 할까? 조례개정이 완료된 시점에 공약이 달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오는 6월이면 완료다. 3월까지 타 지자체 조례를 벤치마킹해서 조례 개정안을 마련한 다음,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통영시의회에서 의결하면 바로 공표되기 때문.

하지만 통영시 담당자도 말하듯 조례개정은 “조례 명문화를 통해 문화예술인 권리보호 및 복리증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는” 선언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조례에 추가하려는 ‘①예술인 창작활동 지원 ②예술인의 처우 및 지위향상 사업 ③예술인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훈련 사업’ 정도만으로 문화예술인 창작의욕 고취 및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해서, 국보급 문화예술인이 양성되리란 기대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팀 오세영 주사는 “조례에는 포괄적으로 담고, 개별사업은 구체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개별사업을 충실하게 마련하고, 공정하게 실행한다면 국보급 문화예술인 양성을 향한 올바른 궤도에 올라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수년 아니 수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기에, 지루한 과정을 인내해야 한다. 제대로 된 궤도를 충분히 달리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을 때쯤이면, 아마 그 성과도 가시권에 들 듯하다.

 

▲구 통영목재 건물. 내부구조가 원형대로 남아있다.

 

ICT활용 실감콘텐츠 공모사업 지원

통영은 충무공의 고장이다. 통영의 역사이자, 당대의 관광 콘텐츠이며, 유산으로 발전적 계승해야 할 미래다. ‘이순신 테마 역사체험프로그램 개발’ 공약은 ICT와 결합한 문화관광 콘텐츠로, 우리 고장만의 체험프로그램이다. 최근 수년간 관광객들에게 선보인 정부 공모사업의 확장판이다. 생생문화재 통영 이순신학교가 그것.

통영 이순신학교는 2017년부터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공모사업으로 이전에는 한산대첩기념사업회가, 재단 창립 이후에는 한산대첩문화재단이 주관해서 실시해 온 프로그램이다. 그 주요내용으로는 충무공 유적지 및 한산대첩 승전지 탐방, 통영의 역사문화와 관광자원 연계를 통한 야간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 프로그램을 주로 운영했다.

자유학기제 활용한 이순신학교, 세병관 문화역사기행, 세병관 야간공연 등이 생생문화재 활용사례. 지난해 공모에 선정되며 올해도 시비 포함해서 총2억7600여 만 원의 사업비가 확정된 상태다. 따라서 올해도 생생문화재 프로그램은 큰 차이가 없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1회 이순신 학교 ‘미리내의 벗’이라는 유적지 탐방 및 야간관광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하지만 내년에는 여기에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실감콘텐츠 프로그램이 추가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아예 공모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실감콘텐츠를 포함시키도록 돼 있다. ICT실감콘텐츠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메타버스(Metaverse),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미디어아트 등을 말한다. 연계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내년 공모에 신청하겠다는 것.

증강현실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 하나로 보여주는 영상’을 말한다. 세계적으로는 2016년 하반기, 국내에서는 2017년 초 출시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포켓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상현실이란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인공 환경’을 말하며, 비행시뮬레이터가 대표사례다.

가상현실이 ‘컴퓨터 안에 현실을 구축하는 것’이고, 증강현실이 ‘현실 세계에 가상의 정보를 덧씌우는 것’이라면, 혼합현실은 ‘사용자가 현실에서 느끼는 오감에 컴퓨터가 만든 정보를 추가하는 기술’로 가상현실+증강현실이라 할 수 있다. 현실세계에 가상세계를 덧입혀서 공존하도록 한 것이다. 확장현실은 위 세 가지 기술을 통합한 것으로,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도.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통용되는 3차원 가상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메타버스 환경을 구축했다면 통영에서 그 환경으로 로그인해서 상품을 비교해서 선택하고, 결제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개념이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은 스마트폰, PC를 넘어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시계 등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최첨단 LG가전제품들을 통해 사물인터넷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드론은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목격했으며, 미디어아트는 남망산공원 디피랑이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이순신학교라는 고유한 프로그램을 가꾸고 있는 통영시는 ICT활용 및 연계 역사체험프로그램 개발로 문화자원 활용을 더욱 가속화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더욱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사문화 및 야간관광 콘텐츠를 결합한 체류형 관광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통영시 문화재팀 우가은 주무관은 “어떤 ICT를 활용할 것인지, 콘텐츠는 무엇으로 할지는 전문가들과 협의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려 50억 원을 투입해 지난 2020년 5월 개장한 통영VR존이 2년을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러 천덕꾸러기가 된 점은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비 또한 17억5000만 원이나 들인 통영VR존은 MZ세대를 겨냥한 최첨단 실감콘텐츠로 기대를 모았으나,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소위 ‘오픈빨’마저 놓친 불운의 시설이다.

어쩌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 영화 아바타의 컴퓨터그래픽 수준은 돼야 만족감을 얻는 시대가 된 것을 우리가 망각한 것인지도. 개장 후 지난해 연말까지 2년 8개월 동안 하루 평균 14명 정도가 방문했다. 올 연초부터 휴장에 들어갔고, 현재는 VR존의 미래를 결정할 경영컨설팅 용역 중이라고.

 

▲ICT체험 프로그램이 VR존처럼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순신 테마 ICT역사체험프로그램 공모신청 계획, 근대역사문화 공간사업 모두 “통영만의 콘텐츠” 필요

군산·목포 근대문화유산을 이기려면?

근대역사문화 공간재생 활성화는 전임이 해 오던 것을 이어받아 추진하는 사업이다. 근현대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하고 활용해 지역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인데, 근현대의 흔적이 남은 곳은 구도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신도시 개발 등으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경제적으로 활기를 잃은 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지역이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특화명품 공간조성’이라는 표현이 실현만 된다면 무슨 문제랴?

통영시 중앙동·항남동 일대는 지난 2020년 국가등록문화재 제777호로 등록된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성 밖 거리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때부터 꾸준하게 조성된 매립지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번화했던 구시가지의 근대도시경관 및 건축유산이 집중돼 있어서 보존·활용가치가 높다”고 평가됐다. 이 공간에 있는 ‘구 통영목재’, ‘김상옥 생가’ 등 건물 9건은 개별등록문화재(국가등록문화재 제777-1~9호)로 등록됐다.

9개 건물 중 5개는 매입을 완료했고, 올해는 4개 건물의 매입협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건물하부에는 과거 통영읍성의 일부 흔적 남아 있는 세병로 인접한 중앙동 상점 부속주택(1937년 건립), 역시 세병로 인접해 있고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돼 있으며, 건축적 가치도 지닌 중앙동 창동2길 3 근대주택(1936년 건립), 통영정미소의 부속 건물로 사용됐던 항남동 근대상가(1920년 대 건축), 1940년대 초 지어진 2층 건물로 조선인이 운영했던 구 대흥여관 건물, 초정 김상옥 선생의 항남동 생가는 이미 매입을 완료했다.

올해는 1936년 건축돼 해방 이후에도 상점으로 사용된 중앙동 근대상가주택(중앙로 161-8), 1910년대 지어져 9개 등록건물 중 가장 오래된 중앙동 근대상가주택(중앙로 144-1), 일제강점기 조성된 매립지에 자리 잡았던 구 석정여인숙(강구안길 17), 1952년 강구안 항구주변에 건축돼 당시 내부구조가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구 통영목재(통영해안로 311) 등을 매입할 예정이다.

통영시는 2025년까지 문화재청의 학술조사 및 종합정비계획 승인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근대역사문화 공간 활용·관리 관련 의제 발굴·제안, 주민협의체 운영을 통한 의견 수렴과 소통에도 소홀 역시 필수라고 판단한다. 소유자가 보상금을 과다하게 요구하는 것은 난제다.

통영시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을 근대역사문화예술촌과 근대역사문화거리, 근대문화예술거리의 3개 구역으로 나눠서 추진할 예정이다. 통영시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정도 목포, 군산, 영주, 영덕, 익산에 이어 6번째다. 다만, 근대문화역사유산으로 이미 이름난 전북 군산 구시가지 적산가옥마을, 전남 목포 구시가지 적산가옥마을을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일단 물량측면에서 통영은 최하위가 거의 분명하고, KTX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서 수도권과 3시간 안팎인 목포, 익산, 군산, 영주와도 비교열위다. 경북 영덕 정도가 수도권과 4시간 거리여서 통영과 엇비슷하다. 통영만의 독특한 콘텐츠를 갖춰야만 하는 이유다. 

▲1936년 건축된 중앙동 근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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